적을 포용한다는 건 매우 힘든 일이다. 우리를 적대시한 그들을 품어 안았다가 언제 어떻게 뒤통수를 맞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특히 우리에게 실제 공격을 가했던 세력과 관련해선 더더욱 그렇다. ‘명백한 위협’이었던 이들에 대한 공포심과 거부감은 본능에 가깝고, 이는 그들의 주변 인물들도 ‘잠재적 위협’으로 인식하도록 만든다.
최근 영국 사회를 격론에 빠트린 샤미마 베굼(19)의 사례가 그런 경우다. 런던 동부 베스널 그린에서 방글라데시계 부모에게서 자란 영국 국적 여성 베굼은 15세였던 2015년 2월, 친구 두 명과 함께 시리아로 향했다. 잔혹한 테러를 일삼는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하기 위해서였다. 이슬람 극단주의 사상에 물들어 조국을 등진 것이다.
그런데 베굼은 지난 13일 돌연 언론 인터뷰를 통해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뱃속의 셋째 아이만큼은 ‘안전한 영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는 지난 4년간의 행적에 대해 “네덜란드 출신 IS 전투원과 결혼해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냈다”며 “딸과 아들을 낳았지만, 두 아이 모두 병에 걸려 숨졌다”고 설명했다. 2주 전 IS의 최후 거점인 시리아 바구즈를 탈출, 난민수용소에 들어갔다는 그는 인터뷰 나흘 뒤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얼핏 생각하면 아이 장래를 걱정하는 엄마에게 관용을 베풀어 줄 법도 하지만, 영국 사회의 반응은 싸늘했다. 베굼이 IS 합류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라고 한 탓이다. 2017년 5월 22명의 목숨을 앗아간 맨체스터 아레나 자살폭탄 테러를 비롯, 수 차례 IS의 공격 악몽이 생생한 영국으로선 이런 그를 결코 자국 땅에 들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일각에선 철없던 시절의 잘못이고, 테러 행위에 직접 관여하진 않았던 점 등을 들어 귀국을 허용하자는 주장도 나오긴 했지만, 여론조사 결과 ‘귀환 반대’ 응답 비율이 무려 76%에 달했다.
실제로 영국 내무부는 베굼의 시민권 박탈 결정을 내린 뒤, 19일 가족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 베굼을 잠재적인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영국 입국을 차단한 것이다. 그가 갓난 아이를 영국에서 키울 경우, 장차 또 다른 ‘테러의 싹’이 움틀 것이라는 판단이기도 하다. 이 같은 조치가 적절했는지를 두고 현지에선 갑론을박이 계속되겠지만, 여기서 그 문제를 논하고 싶진 않다. 주목하고 싶은 대목은 자국 출신 IS 가담자들을 포용하지 않겠다는 영국 정부의 무관용 선언이다. IS에 몸 담았던 이들에 대해서 공동체의 일원으로 다시 받아들여선 안 될 절대적 타자(他者), 곧 ‘괴물’이나 다름 없는 존재라고 못 박았다는 얘기다.
최근 5ㆍ18 망언을 쏟아낸 자유한국당 의원들도 그런 부류다. 그들의 발언이 우리 사회에 ‘위협’인 까닭은 단지 ‘북한군 개입 폭동설’이라는 근거 없는 허위 주장(이종명 의원)을 했다거나, “5ㆍ18 유공자라는 이상한 괴물 집단” 이라는 막말(김순례 의원)로 유공자들의 명예를 훼손해서가 아니다. 이 나라의 현대사를 뒤틀리고 얼룩지게 했던 레드 콤플렉스와 지역주의를 뒤섞어 특정 지역 차별과 혐오, 나아가 증오를 또다시 부추기고 있기 때문이다. “5ㆍ18 문제만큼은 우파가 물러서선 안 된다”(김진태 의원)는 선동적 언급은 여전히 5ㆍ18의 역사가 그들에겐 ‘정치적 선동 소재’에 불과함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국회의원의 이런 발언들은 우리 사회가 수용해도 되는 범위를 한참 넘어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이제는 법적 제재를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2차 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을 찬양하거나 부인, 경시하는 행위를 대중선동죄로 규정해 처벌토록 하고 있는 독일의 입법 사례를 한국도 도입하는 방안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때가 됐다는 얘기다. ‘진짜 괴물’까지 우리가 포용할 수는 없지 않은가.
김정우 국제부 차장 woo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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