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1시40분 제주 서귀포 중문관광로의 수족관 퍼시픽랜드. 평일 오후였지만 200여명이 넘는 가족 단위 관람객들이 객석을 채웠다. 세 명의 조련사들과 세 마리의 돌고래가 등장하자 관객석에선 함성이 터져 나왔다. 돌고래들은 음악 소리에 맞춰 “끽~끽” 소리를 내고 조련사의 박수에 춤을 추고 점프를 했다. 이 돌고래 공연이 더욱 눈길을 끈 것은 바로 서울대공원이 위탁을 맡긴 큰돌고래 ‘태지’(19세ㆍ수컷)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 마리의 공연이 끝나자, 보다 강도 높은 돌고래 쇼가 이어졌다. 두 명의 조련사와 또 다른 두 마리의 돌고래인 ‘비봉이’와 ‘똘이’는 수중에서 함께 쇼를 했고, 쇼가 끝나자 관람객들과의 사진 촬영에 동원됐다.
서울대공원은 지난 2017년 6월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쇼장이 아닌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시민과 전문가의 의견에 따라 ‘금등이’와 ‘대포’를 방류하면서 돌고래 사육사를 폐쇄했다. 그러면서 당시 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방류에서 제외된 태지를 제주에 있는 돌고래 쇼업체인 퍼시픽랜드에 위탁했다. 하지만 대공원은 태지가 갈 곳을 찾지 못했고, 오는 3월이면 세 번 연장된 위탁 계약이 끝나게 된다. 계약만료를 앞두고 이날 대공원, 동물보호단체, 전문가 20여명이 퍼시픽랜드 모여 태지 상태를 점검하고 앞날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내실에서 만난 태지는 언뜻 봐도 건강상태가 좋아 보였다. 태지는 가까이 다가온 사람에게 물을 뿌리는 장난도 치면서 호기심을 보였다. 2년 전 사람의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냈던 모습과는 확연하게 달랐다. 당시 서울대공원에 홀로 남겨졌던 태지는 스트레스로 인해 고래의 자살행동으로 불리는 ‘스트랜딩’(육상으로 올라와 바다로 돌아가지 못하고 죽는 것) 현상까지 보일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었다. 퍼시픽랜드를 운영하는 퍼시픽마리나의 고정학 대표는 “2년 전에는 변에서 소화되지 않은 고등어 뼛조각까지 나왔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다”며 “다른 개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환경에 적응하면서 이제는 완벽하게 건강을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이날 태지의 상태를 점검한 동물보호단체와 전문가들은 태지의 건강이 호전되고 적응을 잘하는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암컷 ‘아랑이’와의 사육으로 인한 교배 문제, 반 생태적 돌고래 쇼 프로그램, 하루 네 번 공연에 따른 소음 스트레스에 대한 문제를 지적했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태지가 아직 번식능력이 있을 가능성이 있는데 암컷과 공동 사육되고 있다”면서 “수족관에서 번식하지 않도록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인 대안을 놓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류종성 환경운동연합 바다위원회 위원장은 “세금으로 구입한 태지를 쇼에 동원하는 게 바람직한지 고려해야 한다”며 “바다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태지는 이미 나이가 든데다 자칫 원래 서식지였던 일본 와카야마(和歌山)현 다이지(太地)로 헤엄쳐 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어 방류도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이지는 돌고래 포획으로 악명 높은 곳이다. 때문에 태지를 퍼시픽랜드에서 지내게 하되, 공연프로그램을 생태프로그램으로 바꾸고 바다쉼터(보호소)가 생기면 소유권을 이전하도록 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생태프로그램 변경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소유권 이전에 대해 퍼시픽랜드 측은 동의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어경연 서울대공원장은 “태지 문제에 대해서는 전문가와 시민들의 의견을 취합해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고 이를 따르겠다”고 밝혔다.
제주 서귀포=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동영상] 퍼시픽랜드에서 만난 태지(서울대공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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