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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한국당의 대통령 모독

입력
2019.02.20 18:00
수정
2019.02.20 19:0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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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어졌지만 한때 국가모독죄가 있었다. 박정희 정권이 1975년 유신체제와 대통령인 자신을 비판하는 세력을 처벌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위반자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이라는 중형이 내려졌다. 실제 고 장준하 선생은 박정희의 친일파, 남로당 경력을 문제삼았다가 국가모독죄로 옥고를 치렀다. 국민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수단으로 악용된 이 악법은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로 폐지됐다.

□ 공교롭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유독 대통령 비방에 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아버지처럼 국가모독죄는 언감생심인지라 대신 명예훼손죄를 남발했다. 대표적인 예가 ‘박근혜 세월호 7시간’ 의혹을 보도한 산케이신문 전 서울지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한 거다. 법원의 무죄 판결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로 결국 망신만 샀다. 박 전 대통령의 과잉 대응은 자신이 한나라당 대표 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했던 것과는 딴판이다. 그는 2004년 한나라당 의원들이 만든 연극 ‘환상경제’를 관람하며 의원들이 노 대통령을 ‘노가리’ ‘X잡놈’ ‘불X값 못하는 놈’ 등으로 조롱하자 박장대소하며 호응했다.

□ 자유한국당 전당대회에서 김준교 청년최고위원 후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막말을 쏟아내 후폭풍이 거세다. 그는 18일 대구ㆍ경북합동연설회에서 “이딴 게 무슨 대통령이냐” “문재인을 민족 반역자로 처단하자”는 등의 자극적 발언을 퍼부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시절 “대통령을 욕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주권을 가진 시민의 당연한 권리”라고 한 것처럼 대통령 비판 자체를 크게 문제 삼을 일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비방을 떠나 정치인의 막말은 사회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고 정치의 품격을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고약하다.

□ 정치인들의 막말은 중독성과 전염성이 강하다. ‘5ㆍ18 망언’이 솜방망이 징계로 끝나고 오히려 일부 태극기부대의 지지를 얻자 금세 정치 초년병에게까지 옮겨간 거다. 한국당 내에서조차 “전당대회가 과격분자들의 놀이터가 됐다”는 탄식이 나온다. 정치인 막말이 과시 욕구나 영웅주의 심리에서 비롯한다는 전문가 진단도 있다. 정치인의 막말을 근절하려면 무엇보다 유권자들의 자세가 중요하다. 막말 정치인에게 지지는 물론 표도 주지 않아야 한다. “입안의 도끼가 제 몸을 찍는다”는 법구경의 교훈을 깨닫게 해주는 수밖에 없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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