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남단 마라도
제주의 바다는 변화무쌍하다. 마라도로 향하는 날 하늘은 흐리고 바람은 거셌다. 산방산 자락 대정읍 운진항으로 들어서는 마라도행 여객선 위로 몇 가닥 빛 줄기가 쏟아진다. 고깃배도 아닌데 갈매기가 호위한다.
운진항에서 마라도까지는 11km, 배로 불과 25분 거리다. 2층 유람선은 ‘갚아도 그만, 말아도 그만’이라 해서 형제 섬처럼 불리는 가파도를 지나 거친 파도를 헤치고 무사히 마라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린 승객은 자연스럽게 두 갈래로 흩어진다. 동서 500m, 남북 길이 1.3km 작은 섬을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조성돼 있다. 시계방향이든 반대방향이든 천천히 걸어도 한 시간가량 걸린다.
마라도는 섬 전체가 평평해 시야는 어디서나 땅 반, 하늘 반이다. 시계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억새가 군락을 이룬 얕은 언덕을 오른다. 마라도에선 거센 바람이 싫지 않다. 간간이 햇살을 비추는 검은 하늘도 이국적이어서 좋다. 언덕 꼭대기, 섬에서 가장 높은 곳에는 1915년 설치한 등대가 있다. 섬을 지키는 등대는 더 외롭다. 주변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희망봉, 독일의 노이베르크 섬, 스코틀랜드의 메이 섬 등 세계 각국의 작은 섬과 땅 끝을 지키는 등대 모형을 세워 외로움을 나눈다.
등대에서 남쪽 비탈로 내려가면 푸른 초지 끝자락에 전복 껍데기 모양의 자그마한 성당이 그림처럼 자리 잡고 있다. 신부가 상주하지 않는 예배당, 모슬포성당 관할 공소(公所)다. 지붕 유리 천장을 통해 빛이 들어오도록 설계해 내부는 작지만 경건하다. 크기와 모양, 느낌까지 마라도 풍광과 닮았다. ‘인생사진’을 남기려는 여행객들이 특히 오래 머무르는 마라도의 ‘포토존’이다. 성당 인근 ‘대한민국 최남단’ 표지석도 꼭 사진으로 남겨야 할 곳이다.
마라도에 있는 건 무엇이든 ‘대한민국 최남단’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섬 서편 자락에는 사찰과 교회도 들어섰다. 관광객이 늘면서 작은 규모지만 상가도 형성돼 있다. 100여명이 거주하는 섬에 편의점이 둘이나 되고, 식당과 숙박시설도 섞여 있다. 중화식당이라는 간판이 없어도 메뉴에 자장면이 거의 빠지지 않는다. 이동통신이 막 보급되기 시작할 무렵, 국토 최남단에서도 통화가 잘된다는 것을 보여줄 의도로 제작한 광고의 영향이다. 철가방을 들고 ‘자장면 시키신 분~’이라고 외치던 바로 그 광고다. 여행객도 마라도에 오면 으레 자장면 한 그릇은 먹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사로 잡힌다. 마라도 자장면에는 톳과 전복 등 해산물이 들어가는데, 10여개 식당마다 재료도 맛도 조금씩 다르다고 한다.
업체마다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최근 방영한 TV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했다는 걸 자랑으로 내세우기도 하는데, 마라도가 겨우 그 정도 섬인가 싶어 다소 씁쓸하다. 역사적 지리적 생태적 가치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마라도는 자체로 충분히 아름다운 섬이다. ‘최남단’ ‘끝자락’ 이라는 수식에는 자장면 한 그릇으로 채워지지 않는 달콤한 허기와 그리움이 섞여 있다. 돌아오는 배를 타기 위해 살래덕 선착장으로 향하는 길 끝자락에 산방산이 가물거린다. 작은 섬 마라도는 역설적으로 넓은 풍광을 품었다. 먹구름 잔뜩 낀 하늘과 물살 사나운 바다조차 사랑스러운 국토의 최남단이다.
◇마라도 가는 길
마라도행 배는 모슬포 운진항에서 하루 5회, 송악산 ‘마라도 가는 배’ 선착장에서 7회 왕복한다. 마라도 체류 시간은 1시간30분~2시간 사이, 왕복 요금은 성인 1만7,000원이다. 날씨에 따라 변동이 많기 때문에 전화로 운항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서귀포=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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