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보단 유통 온도가 신선도 좌우… 전문가는 “득보다 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식용란선별포장업(오는 4월 시행)과 더불어 ‘살충제 계란’ 대책으로 추진하는 것이 계란의 산란일자 표기 의무화다.
현재 계란 껍데기에는 농장 고유번호(5자리)와 사육환경(1자리)만 표시하고 있는데, 오는 23일부터는 여기에 산란일자(4자리)를 함께 새겨야 한다. 가령 ‘1012 M3FDS 2’란 번호가 계란에 찍혀 있으면 ‘1012(10월12일)’는 산란일, ‘M3FDS’는 농장 고유번호를 뜻하는 식이다.
식약처가 산란일자 표기를 의무화하는 건 조류독감(AI) 등 악재로 계란 값이 떨어질 때 계란을 쟁여 두었다가 가격이 오르면 이를 시장에 푸는 일부 양계농가의 기회주의적 행태를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양계농가들은 “이 제도가 농가를 다 죽일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보통 계란 유통기한은 포장일로부터 30일 정도다. 그런데 산란일까지 표기하면 소비자들이 며칠만 지나도 ‘묵은 계란’은 꺼리는 부작용을 부채질할 거란 주장이다. 이홍재 대한양계협회 회장은 “산란일자가 찍히면 유통상인은 생산된 지 3~4일만 지나도 계란을 아예 수거하지 않거나 가격을 후려칠 것”이라며 “제도 시행 전에는 정상 유통되던 계란까지 ‘자동 폐기’되고 결국 그 부담은 모두 농가에게 돌아가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도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계란의 신선도는 산란일자보다 유통 온도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것이다. 실제 국회입법조사처는 최근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계란의 품질과 위생은 가공ㆍ유통 중 온도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여러 나라들이 이를 규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미국(7도 이하), 캐나다(4도 이하), 일본(8도 이하)은 유통 온도를 10도 이하로 통제하지만, 우리나라의 기준(15도 이하)만 지나치게 높다”며 “이마저도 권고사항이라 반드시 지켜야 할 의무가 없다”고 전했다. 정승헌 건국대 교수는 “계란 배송, 보관 등 모든 과정에서 적정 온도를 유지하는 냉장 시스템 구축을 의무화하는 게 더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소비자 단체나 개별 소비자들은 산란일자 표기에 ‘전적으로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 1~8일 소비자 500명(20~60대)을 대상으로 이 제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90.2%는 ‘산란일자 표기는 시행해야 한다’고 답했다.
찬성 이유로는 ‘계란 신선도를 아는 데 도움이 된다’(59.6%), ‘오래된 계란의 유통을 막을 수 있다’(20.6%) 등 순이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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