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당권 주자들, TK 연설회서 격돌

자유한국당 2ㆍ27 전당대회에 출마한 세 명의 당대표 후보가 18일 책임당원 28.5%가 몰린 ‘보수의 심장’ 대구ㆍ경북(TK)에서 격돌했다. 황교안ㆍ오세훈ㆍ김진태 후보는 문재인 정부 실정에 싸울 적임자는 자신이라고 강조하며 TK표심 구애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지난 14일 대전 연설회에서 야유와 욕설을 쏟아내 논란이 된 김진태 후보 지지자들은 이날도 고성과 욕설로 행사 진행을 방해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태극기 집회를 방불케 하는 극우 당원들의 과한 응원 탓에 축제가 돼야 할 전당대회가 자칫 분열을 조장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합동연설회는 한국당의 전체 책임당원 약 33만명 가운데 9만3,000여명이 몰려있는 ‘텃밭’에서 치러진 만큼 시종 열띤 분위기로 진행됐다. 3,500석에 이르는 연설회장에서 가장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 건 김 후보의 지지자들이었다. 언뜻 봐도 전체 객석의 절반 이상을 메운 이들은 이날 연설회 시작 한 시간여 전부터 장내ㆍ외에서 “김진태! 김진태!”를 연호했다. 형형색색 분장을 하고, 김 후보 이름이 적힌 응원용 막대풍선과 슈퍼맨 복장의 김 의원 얼굴을 새긴 풍선을 흔들며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은 인기 아이돌 가수의 콘서트장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번 전대를 앞두고 한국당에 입당한 김 후보 지지자는 최대 3만 여명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응원 열기가 과열 양상을 띠면서 행사가 차질을 빚기도 했다. 후보자 연설 전 연사로 등장한 김병준 비상대책위원장은 5ㆍ18 폄훼 논란으로 당 윤리위에 회부된 김 의원 지지자들의 항의성 고함 탓에 한동안 입을 떼지 못했다. “김병준 나가라” “빨갱이” 같은 원색적 표현이 반복되자 김 위원장은 “조용히 해달라. 여러분들이 뭘 이야기하고 요구하는지 알고 있다”며 굳은 표정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다른 후보를 향해 욕설을 쏟아내는 일은 지난 연설회보다 줄었지만, 연설 중간중간 “김진태”를 외치며 흐름을 끊었다. 김 후보는 이날도 지지자들의 지나친 움직임이 도마에 오르자 “저를 윤리위에 회부시킨 것에 대한 서운한 감정이 아니겠나 생각하지만 예의가 아니기 때문에 저도 바늘방석이었다”며 “(욕설에 대해서는) 제가 대신 사과 드린다”고 했다.
당 안팎에선 지지자들의 막강한 행동력과 조직력을 등에 업은 김 후보가 전당대회판을 흔드는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 관계자는 “현장 분위기만 보면 김 후보 지지세가 압도적”이라며 “지금까지는 황 후보가 우세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지만, 당초 최약체라는 평가를 받던 김 후보가 반전을 만들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날 당 대표 후보 연설은 김 후보, 오 후보, 황 후보 순으로 이뤄졌다. 세 후보 가운데 이념적으로 가장 오른쪽에 있다는 김 후보는 “강한 우파 정당을 만들겠다”며 지지를 호소했다. 김 후보는 특히 사전 원고도 없이 무대에 올라 객석과 대화하듯 연설을 하는 여유를 보였다.
개혁보수 기치를 내건 오 후보는 약점으로 꼽히는 탈당 전력을 불식시키는 데 주력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보수의 가치를 지키다 쓰러진 장수를 내치지 말아달라”며 “정말 뛰고 싶다. 버리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그간 ‘통합’을 강조해왔던 황 후보의 경우 이날은 TK의 정통 보수 성향을 의식한 듯 통합이란 말을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 그 대신 “폭정” “엉터리 경제정책” “구걸 평화” 같은 거침없는 표현으로 현정부를 비판하며 “국민과 함께 끝장투쟁에 나서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구=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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