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문제가 매듭 지어지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노동시간위)는 18일 오후 7시간 넘는 회의를 진행하면서 견해차를 좁히기 위한 막판 조율을 시도했으나 밤 늦게까지 뾰족한 결론을 내놓지 못했다. 노ㆍ사ㆍ정은 탄력근로제 확대 논의를 19일 오후까지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다. 핵심쟁점인 탄력근로제 단위시간 연장 여부 뿐 아니라 탄력근로제 확대로 인한 임금보전, 근로자 건강권 보장 문제 등 대해서도 노사 위원들은 이견을 보였다.
노동시간제도개선위원회의 이철수 위원장은 19일 새벽 8차 전원회의 결과를 알리는 브리핑을 열고 “막바지 조율을 위해 추가 논의의 필요성을 느껴 논의 시한을 하루 더 연장하기로 했다”며 “경총 부회장, 한국노총 사무총장, 고용노동부 차관 등 책임 있는 당사자들과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전체회의는 예정된 시간보다 약 2시간 20분 늦은 18일 오후 3시50분쯤 서울 종로구 S타워 경사노위 회의장에서 열렸다. 원래 오후 1시30분 개회 예정이었으나 민주노총 간부들이 항의 서한을 제출하겠다며 회의 현장에서 피켓 시위를 벌이자 위원들이 한동안 회의 참석을 거부해 회의가 지연됐다.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 등 민주노총 간부 10여명은 항의 서한을 전달하겠다며 낮 12시쯤부터 회의장에서 노동시간위 위원들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노동시간 늘리고 임금 삭감하는 탄력근로 논의 중단하라’, ‘경사노위는 탄력근로제 개악논의 중단하라’, ‘탄력근로제 논의는 경총 민원처리’와 같은 내용이 적힌 피켓, 현수막을 들고 실내에서 시위를 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성명을 내고 “경사노위가 민주노총이 빠져 있는 틈을 타 의제별 위원회인 노동시간위 합의로 탄력근로제를 추진할 계획인데, 애초 민주노총이 요구한 사회적 대화 취지를 망가뜨리는 이 같은 시도는 내용과 절차가 모두 원천적으로 부당한 반쪽짜리 야합 시도나 다름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사노위의 근거 법을 만드는 데는 함께 했지만, 지난달 28일 대의원대회에서 경사노위 참여 안건의 통과가 불발되며 현재 경사노위에 참여하지 않고 있다. 다만 민주노총은 이날 항의 서한 전달이 회의 진행을 막기 위함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했다.
민주노총의 항의서한 전달을 의식한 노동시간위 위원들은 예정된 개회 시간이 훌쩍 지나서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가장 먼저 나타난 사람은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이었다. 그는 오후 3시40분쯤 회의장에 들어와 피켓 시위를 하는 민주노총 간부들을 “동지들”이라고 지칭하며 “한국노총 역시 (경사노위 회의에서)열심히 투쟁하고 싸우겠다”고 말했다. 이성경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민주노총 간부를 찾아 다니며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민주노총 간부들도 악수를 피하지 않았다.
이윽고 박태주 경사노위 상임위원이 항의서한 접수를 위해 회의장에 내려왔다. 그러자 이주호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간단한 입장 발표를 하고 항의서한을 전달했다. 이 실장은 “회의 방해하러 온 것은 아니고 항의서한을 전달하러 왔다”고 운을 뗐다. 이어 이 실장은 “탄력근로제 확대에 반대하는 이유는 임금이 줄고, 노동시간은 늘고, 일자리는 사라지고, 과로사를 유발할 수 있기 때문”이라며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논의하려면 연간 근로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700시간대(한국은 약 2,000시간)로 진입한 뒤 사회적 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 민주노총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노총은 경사노위 운영위원회, 전체회의 등을 거치지 않은 채 산하 의제별 위원회인 노동시간위가 결론을 발표하는 것은 절차적 문제도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간부들은 입장 발표 직후 박태주 상임위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곧바로 회의장을 빠져 나갔다.
노동시간위 위원들은 박 상임위원의 입장 발표가 끝난 뒤 오후 3시40분쯤 회의장에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이철수 위원장은 모두 발언에서 “(민주노총의 항의서한 전달 시도로) 장내 정리가 안 된 상태여서 회의 시작이 늦었다”며 “(자세한 내용은) 전체회의가 끝나면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김용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부회장은 “밀도 있는 논의를 했고 한국노총과 함께 노사 합의 이루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웠고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고 전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본부장은 “노동자 건강권 보호장치가 없는 탄력근로제는 살인이나 다름 없으므로 2,000만 노동자의 권리 쟁취와 건강권 보호를 위해 끝까지 협상하겠다”고 했다. 이후 회의는 비공개로 전환됐으며 오후 11시까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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