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가 한순옥님에게 써준 메모>

韓淳玉 世孫 의게 주노라

한순옥 세손에게 주노라

還國 後 丙戌 七月十一日은 即 余之七十一歲 生日 임으로

귀국한 뒤인 병술 7월11일(양력 1946년 8월7일)은 곧 나의 71세 생일이므로

너를 紀念코저 摂影한 것

너와의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촬영했다.

汝家在上海 我携短槍往汝家

너희 집이 상해에 있을 때 너희 집에 권총을 가지고 갔었다.

弄槍誤彂時 汝尚在腹中

총을 가지고 놀다가 오발이 됐을 때 너는 아직 뱃속에 있었다.

天幸都無事

다행히 하늘이 준 큰 행운 덕에 아무 일도 없었다.

今汝十七歲 细想舊日事

이제 너는 17세고 옛 일을 자세히 떠올려 보니

不覺身生粟

나도 모르게 몸에 소름이 돋는구나

1930년 일제의 감시망과 수탈에 숨이 막히던 시절. 상해 임시정부를 이끌던 백범 김구 선생은 직업을 가진 동포들의 집에서 식사를 구하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훗날 자신의 이중첩자로 활약한 동포 한도원(1906~1984ㆍ애국장)의 집에 여느 때처럼 식사를 청하러 갔던 그는 식사를 기다리던 중 실수로 손질하던 권총에서 오발탄을 터뜨리게 됐습니다.

순사들이 달려올까 두려웠던 김구는 급히 몸을 피했지만 마음은 늘 불편했습니다. 당시 한순옥씨를 뱃속에 품고 있던 한도원의 아내 홍성실(1906~1956)님이 총 소리에 놀라 유산했을까 걱정됐던 겁니다. 그 뒤 한도원의 집을 좀처럼 찾지 못했던 김구는 16년 뒤인 1946년 깜짝 놀라는 경험을 합니다. 17세 소녀가 된 한순옥씨가 그를 찾아와 당시의 일을 자세히 이야기했던 것이지요. “한도원 마누라 별 일 없느냐”라며 노심초사했던 당시를 떠올린 김구는 건강하게 자란 한순옥님을 위해 자신의 사진을 촬영한 후 여백에 이 글을 써서 선물로 줬습니다. 이 메모는 73년 만에 처음(한국일보 2월12일자)으로 공개 됐습니다.

정준호 기자 junho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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