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옥상서 리모델링 기공식
9~10층 헬기사격 탄흔 원형 보존
광주 금남로. 지금이야 ‘민주화의 거리’라는 가슴 먹먹한 평가를 받지만 39년 전 5월, 이곳은 ‘총칼의 거리’였고, ‘죽음의 거리’였다. 어떤 사람은 “학살의 거리”라고도 했다. 그 거리에서도 1가(街) 1번지. 지하 1층 지상 10층짜리 전일빌딩은 삶과 죽음이 내려다보이는 마루턱이었다. 그날의 참상을 생생하게 지켜본 ‘목격자’이자 ‘증인’이었던 것이다.
그런 건물 옥상에서 18일 오전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광주시가 추진 중인 전일빌딩 리모델링 사업 기공식이었다. 언뜻 보면 그저 그렇고 그런 개ㆍ보수공사이겠거니 하겠지만, 속을 들여다 보면 사정은 달라진다. “전일빌딩은 과거를 기억하고, 현재를 나누며, 미래를 꿈꾸는 곳이 돼야 합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시민 등 100여명은 이 사업의 의미를 전해 듣곤 이내 숙연해졌다.
실제 이 행사가 주목을 끈 것은 전일빌딩이 갖는 역사성과 상징성 때문이다. 1968년 12월 지하 1층 지상 7층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이후 세 차례 걸쳐 10층으로 증축됐다. 빌딩 옥상은 5ㆍ18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이 계엄군의 광주 진압에 맞서 마지막까지 항쟁했던 공간으로 쓰였다. 시민들은 계엄군을 피해 몸을 숨기는 은신 장소로 활용하기도 했다. 광주시민들이 전일빌딩을 옛 전남도청과 함께 ‘5ㆍ18항쟁의 상징 건물’로 부르며, 그 날의 의미를 되새기는 이유다. 그런 전일빌등은 아직까지 쓰라린 상처를 안고 있다. 5ㆍ18 당시 계엄군이 헬기에서 쏜 것으로 추정되는 총탄 흔적 150여 개가 빌딩 9~10층에 낙인처럼 새겨져 있다. 현재 건물 앞부분은 58~185㎜ 기울어져 있다.
그러나 전일빌딩의 ‘알려지지 않은 상처’는 자칫 도심 개발(철거)이라는 이름으로 지워질 뻔했다. 시가 2016년 빌딩 내 총탄 흔적이 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전일빌딩을 복합문화센터 및 관광자원화 시설로 조성하기로 한 탓이었다. 시는 “전일빌딩에 탄흔이 남아 있다”는 5ㆍ18단체와 목격자들의 진술이 이어지자 같은 해 9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조사를 의뢰했고, 마침내 5ㆍ18 헬기사격이 기정사실화하자 원형 보존키로 했다.
시는 이에 따라 총탄 흔적이 발견된 9∼10층을 원형 보존해 ‘5ㆍ18기념공간’으로 조성키로 하고 5ㆍ18 전시관, 총탄 흔적 특화, 5ㆍ18 관련 자료실 등을 배치할 계획이다. 또 5~7층은 광주 미래 먹거리인 문화산업 혁신성장 생태계 조성을 위한 문화콘텐츠 기업 입주 공간 및 공용시설 구축 등을 통한 아시아문화전당 지원 공간으로 꾸미기로 했다. 지하 1~4층은 전자도서관, 남도관광마케팅센터, 시민생활문화센터, 시민사랑방 등 시민들을 위한 문화복합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옥상은 무등산을 비롯해 광주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된다. 시는 5ㆍ18 40주년을 앞둔 내년 3월 새로운 전일빌딩을 개관하기로 했다.
시 관계자는 “전일빌딩 리모델링 사업은 단순 물리적 환경개선사업이 아니라, 역사성과 상징성이 있는 전일빌딩을 시민의 뜻에 따라 시민 스스로 만드는 시민참여플랫폼을 조성해 시민들의 품으로 다시 돌려줄 것”이라며 “이번 사업을 통해 전일빌딩이 인근 아시아문화전당과 연계한 역사문화 관광자원으로서 역할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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