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전속고발권 폐지 등 핵심내용 반대
“공정경제는 혁신성장의 기반이 된다. 국회에서 입법할 일은 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주면 좋겠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답보상태에 빠진 공정거래법 개정안(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 전부개정안)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ㆍ여당이 팔을 걷어 붙이는 모습이다. 전속고발권 폐지와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 등을 골자로 한 공정거래법안은 공정경제를 약속한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다. 그러나 정부의 늦은 법안 제출과 여당의 소극적 태도로 논의가 지연돼왔다. 내년 총선을 고려하면 법안 논의에 쏟을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때문에 정부·여당은 6월 임시국회까지 매듭 짓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같은 바람과 달리 험로가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선 벌써부터 처리 가능성이 낮다며 고개를 젓기도 한다. 경제민주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법안이 다수 제출돼 정리가 필요한데다, 여야간 간극이 큰 법안도 많아 진영간 양보없는 싸움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계열사 확장 금지와 기업분할 명령을 담은 법안에서 불공정 거래 기업에 대해 형사처벌을 하지 못하도록 한 법안까지, 상대 진영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법안들도 함께 대기중이다.
◇문재인 정부 이후 나온 법안만 62건…내용도 천차만별
17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발의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모두 62건이다. 여당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는 법안을, 야당은 공정위의 조사 권한을 약화시키는 법안을 주로 발의했다.
여당 의원들이 발의한 것 중 가장 강한 규제 법안은 2017년 6월에 발의된 박용진ㆍ이종걸 의원 안이다. 이 의원은 독ㆍ과점 시장에 대해 정부가 시장구조개선명령은 물론, 기업분할이나 계열분리까지 할 수 있도록 한 법안을 발의했다. 박 의원은 무분별한 계열사 확장을 막기 위해 지주회사에 대한 총수 일가의 행위 제한 기준을 부채비율의 200%에서 절반으로 줄이는 법안을 냈다. 김경협 의원은 불공정거래로 집단피해가 발생했을 경우 ‘집단소송’이 가능하게 하고, 국민이 불공정 행위를 판단하는 ‘국민심사위원회’ 도입을 골자로 한 법안을 제출했다.
야당 의원들은 여당과 달리 법안 제출에 소극적이다. 신중하게 접근하는 내용들이라 자칫 시대적 과제가 된 경제민주화에 역행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당 의원들이 낸 법안은 7개가 전부다. 공정위의 조사 개시 절차를 강화하거나 처분 시효를 줄이는 등 공정위의 조사권한을 축소시키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여권 ‘선택과 집중’ 택했지만…이견 조율은 전무
법안이 천차만별인 탓에 정부ㆍ여당은 ‘선택과 집중’을 택했다. 전부개정안 원안 통과는 쉽지 않다고 보고 일부 내용만 개정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전속고발권 폐지 △일감 몰아주기 규제 △지주회사의 자회사(손자회사 포함) 지분율 상향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 △형벌규정 정비에 집중할 방침이다.
하지만 야당은 법안의 핵심인 전속고발권 폐지부터 받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기업에 대한 고소ㆍ고발이 난무해 기업 경영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한다. 김선동 한국당 의원은 대안 성격으로 전속고발권 관련 범죄의 공소시효를 공정위가 고발한 날부터 1년 연장하는 법안을 내놨다. 형벌규정도 첨예하다. 정부는 경쟁 제한효과가 작은 행위에 대해서는 형벌 규정을 삭제하기로 했지만, 윤상직 한국당 의원은 위반 행위에 대한 형벌 규정을 완전히 없애고 과징금만 부과하도록 한 법안을 내놨다. 또 여당 의원 상당수가 과징금 한도를 높이자고 주장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한편 일각에선 정부ㆍ여당의 늑장대응이 법안 처리를 더 어렵게 만들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의 핵심 과제지만, 공정위는 정부가 출범한지 1년 6개월이 지난 작년 11월30일에 법안을 제출했다. 당시 예산안과 쟁점 민생법안에 밀려 아직 상임위 논의 1단계인 법안 일독도 하지 못했다. 여야간 논의는 아직 한차례도 이뤄지지 않았고, 주요 쟁점에 대한 야당 입장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2월 임시국회가 정상화되더라도 법안 논의에 곧바로 착수하기 어렵다는 우려 섞인 전망도 나온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석경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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