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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광주, “5ㆍ18 낳고 품은 우리가 괴물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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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광주, “5ㆍ18 낳고 품은 우리가 괴물이냐”

입력
2019.02.16 18:02
수정
2019.02.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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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5ㆍ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자유한국당 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저작권 한국일보] 5ㆍ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자유한국당 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

“대검으로 찌르고 총 개머리판으로 머리를 으깨던 것과 뭐가 다르답니까?”

모두가 다시 모였다. 졸지에 ‘괴물집단’을 잉태하고, 낳고, 품었던 도시가 돼버린 탓이었다. 39년 전, 계엄군의 군홧발과 가슴에 튀는 총탄이 난무했던 금남로는 또다시 분노의 함성으로 뒤덮었다.

16일 오후 4시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5ㆍ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범시민궐기대회가 이를 입증했다. 차가운 거리를 가득 메운 5,000여여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은 주먹을 불끈 쥐며 “이번에야말로 저들의 사악함을 뿌리뽑아야 한다”고 했다. ‘5ㆍ18민주화운동 망언’을 쏟아낸 자유한국당 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시민들은 이들을 ‘다시 꿈틀대는 5ㆍ18학살자들의 검은 손’으로 지칭했다. 황모(53ㆍ광주 서구)씨는 “5ㆍ18유공자를 괴물집단으로 매도한 망언자들이 진짜 괴물 아니냐”며 “저 교활한 뱀의 혀를 다시는 놀리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랬다. 이날 옛 전남도청 앞 5ㆍ18민주광장과 금남로에 모인 시민들은 모두 투사라도 된 듯 저마다 울분을 토해냈다. “언제까지 저런 망언과 모독을 지켜봐야 하는 건지 정말 환장하겄소.” 집회가 시작할 무렵, 5ㆍ18 당시 계엄군의 헬기사격을 온몸으로 받아냈던 전일빌딩 뒤쪽 소줏집에서 소주 잔을 기울이던 최인수(67)씨는 “저것들한테 5ㆍ18이 살아 있다는 걸을 보여줘야 하는데, 저 XX들을 어찌해야 쓰겄냐”고 반문했다. 옆자리에 있던 박모(63)씨도 거들었다. “나도 5ㆍ18때 금남로에서 눈물 질질 흘리며 싸웠소. 그럼 나도 괴물인거요? 허허. 저놈들 세치 혀에 우리가 휘말려서는 안 돼요.”

[저작권 한국일보] 5ㆍ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자유한국당 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저작권 한국일보] 5ㆍ18역사왜곡 처벌을 위한 광주 범시민궐기대회가 열린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시민들이 자유한국당 김진태ㆍ김순례ㆍ이종명 의원의 제명을 촉구하고 있다. .

이날 궐기대회가 열린 금남로는 다시 일어선 ‘광장(廣場)’이었다. 실제 도로 한쪽엔 5ㆍ18 당시 시민군들의 배를 채워주던 주먹밥 나눔 현장이 판을 벌이는 등 매년 열리는 5ㆍ18전야제를 연상케 했다. 다만 그 때와 다른 게 있었다면, ‘5ㆍ18 망언 3인방’에 대한 성토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는 것이다. 두 아들과 함께 궐기대회에 참석한 정모(56)씨는 “지금껏 보수단체 애들이 5ㆍ18을 폄훼하고 왜곡해도 그러려니 했는데, 이번엔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며 “저들에게 서글픔을 넘어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게 더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은 해체하라.” “5ㆍ18 망언, 괴물 3인방을 즉각 제명하라.” 이날 2시간 넘게 계속된 ‘함성’은 시민들의 5ㆍ18역사왜곡처벌법 제정 요구로 이어졌다. 이날 광주시민들은 “우리의 5ㆍ18역사는 우리가 지켜야 한다. 이제 무언가를 해야 한다“며 “법을 만들어 다시는 5ㆍ18 망언이 나오지 않도록 막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자유연대 회원들이 5ㆍ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오후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보수 성향 시민단체인 자유연대 회원들이 5ㆍ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명단 공개 촉구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집회 시작 3시간여 전, 극우단체의 5ㆍ18 왜곡 퍼포먼스는 또 한 번 광주 민심의 감정선을 건드렸다. 검정색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쓴 70여명이 금남로 4가에서 “5ㆍ18유공자 명단 공개”를 외치며 시민들을 자극한 것이다. 마이크가 장착된 방송차에 오른 한 사람은 욕설까지 섞어가며 5ㆍ18 유공자에 대한 갖은 의혹을 제기했다. 시민들을 자극하면서 물리적 충돌을 유도해 궁지에 몰린 망언 의원들을 구하려는 행위로 비춰졌다. 그래서일까. 시민들은 5ㆍ18 가짜뉴스를 퍼뜨리는 이들에게 냉소를 쏟아내면서도 의연하게 대처해 충돌을 피했다. 이를 지켜본 한 시민은 “분란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광주에서 이런 일을 벌이는 것 같다”며 “화는 나지만 저들의 꼼수에 말려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5ㆍ18 망언 의원들의 제명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시민들은 대부분 “더 이상 5ㆍ18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금남로를 빠져나가던 이진철(59)씨는 “5ㆍ18은 광주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뜨거운 자존심이다”며 “망언 3인방에게 이를 무참하게 깔아뭉갤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글ㆍ사진=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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