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철 분노유발 ② 거대한 감시 사각지대
더 큰 문제는 부동산 거래의 주무 부처인 국토교통부 소관인 공인중개사법에는 허위매물 규제 내용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입니다. 부동산 매물을 내놓은 업체의 명칭 등은 기재하도록 하지만 정작 고객들에게 중요한 매물의 위치나 중요 정보 등에 대한 규정조차 없습니다.
어처구니 없는 지점은 또 있습니다. 한국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에 가입하고 자율 규약이나마 지키는 업체들은 네이버 부동산을 비롯한 총 20개사. 중요한 점은 2012년을 전후해 폭발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모바일 부동산 플랫폼 업체인 직방, 다방 등은 가입돼 있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허위매물을 올렸다가 KISO로부터 제재를 받은 업소가 중복 가입한 모바일 플랫폼에 똑같은 허위매물을 올려도 아무 제재를 받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악성 중개업소가 여러 플랫폼을 넘나들며 소비자를 기만하는 상황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 PC 기반의 운영 체계를 갖고 있는 KISO 가입사들의 주된 거래 유형은 거래 대금과 보수가 높은 아파트가 대부분입니다. 이는 곧 원룸 등 1인 가구와 청년 세대가 빈번하게 찾는 부동산 매물 시장은 사실상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1인 가구와 청년 세대가 최대 피해자인 셈입니다.
일례로 업계 정상권인 직방 측은 ‘매 분기마다 허위매물 단속 작업 결과를 발표하며 허위매물 근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고, 허위매물 역시 확연히 줄고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이는 적습니다. 직방 측은 ‘허위매물 아웃 프로젝트’ 등을 통해 허위매물 게시 빈도가 높은 지역을 추려 점검을 하고 적발 시 매물 게시 금지 조치 등을 취한다고도 합니다. 매번 20% 안팎의 중개사들이 허위매물을 게시해 적발됐다는 보도자료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물론 그 정확한 규모는 기재돼 있지 않지만요.
KISO에 가입하지 않는 이유를 두고도 “플랫폼 경쟁사인 네이버 위주로 운영되는 KISO 가입은 쉽게 결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업계에서는 “허위매물이 너무 많아 규약 준수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을 등에 업고 부동산 매물 시장의 투명화를 기치로 내세우며 급성장했던 모바일 부동산 플랫폼이 오히려 시장을 혼탁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는 역설적인 상황입니다
◇다시 마련된 부동산 중개사법 개정안, 그러나
매물의 중요정보를 명시하도록 하고, 허위매물 관리 및 처벌 방안 등을 담은 공인중개사법 개정안이 지난해 10월 국회에 발의됐지만 여전히 많은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이 개정안을 두고도 세부 주소 등 중요 정보의 수준을 어디까지로 할 것인지, 거짓 허위광고의 기준을 어떻게 정할 것인지, 감시는 누가 할 것인지 등 많은 토론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모바일 부동산 플랫폼 사업자에 대한 규제 기준 마련 문제 등은 국토부는 소관 부처가 아니라는 이유 등으로 개정안에서 거의 언급되지도 않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당사자인 공인중개사협회가 법안 통과를 극구 반대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2013년에도 비슷한 법안이 발의된 적이 있지만 한국공인중개사협회 등의 국회 압박으로 결국 철회하게 됩니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박홍근 의원의 개정안 공청회가 열렸던 지난 8일 국회 행사장은 법안에 반대하는 공인중개사들의 고성과 이의 제기로 한참이나 소란을 겪었습니다. 한국공인중개사협회는 △개정안이 매물 주소 표시로 고객의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고, △영업 비밀이 노출되며, △한 매물에 대해 여러 중개사가 개입하는 구조 상 매물 완료 여부를 일일이 알기도 어렵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했습니다. 협회의 공식 입장은 ‘현행 표시광고법에 따라 기존처럼 공정위가 담당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만의 무한경쟁이 불러온 시장 혼탁
그러나 전문가들은 허위매물로 넘쳐나는 온라인 부동산 시장의 이면을 공인중개사협회 측과는 다르게 분석합니다.
임재만 세종대 산업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허위매물을 미끼 삼아 고객을 유인하는 중개사들의 기저에는 정보 공유에 대한 불안감이 깊이 자리잡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나라가 적용 중인 일반 중개제도는 매물을 내놓는 의뢰인이 의뢰할 수 있는 중개사 숫자에 제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 됐든 마지막에 계약을 성사시키는 중개사가 모든 보수를 챙기는 구조입니다.
공인중개사의 사업 경쟁력은 가격도 적당하고 시설과 위치 등 모든 조건이 훌륭한 ‘진성’ 매물을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 있습니다. 더더구나 현재 활동 중인 우리나라의 공인중개사는 대략 10만명. 업계에서는 대학수학능력 시험 다음으로 가장 응시자가 많은 시험이 공인중개사 시험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옵니다. 아파트 단지 한 군데에 4, 5군데의 중개 업소가 몰려 있는 건물을 찾는 건 쉬운 일입니다. 때문에 지금도 서로 매물 가로채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벌어지는 부동산 시장에서, 매물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안이 환영 받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KISO에 가입한 상당수 플랫폼들이 일반에 공개하지는 않지만 이미 매물의 세부 주소를 반드시 제시하고 있는 상황에 비춰보면 중개사들의 이 같은 집단행동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공인중개사들 역시 매월 수십 만원에 달하는 광고비를 거둬가는 모바일 앱 사업자들을 비난하면서도 주소지 기재 등을 거부하고 있는데 이는 다시 또 1인 가구와 청년 세대의 불편으로 귀결됩니다.
미국처럼 최초 의뢰를 받은 중개사가 계약을 완수토록 하는 전속 중개제도 및 여러 중개사가 참여하더라도 최초 중개사에게 일정 부분 보수를 나눠주도록 하는 공동 중개제도 도입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많습니다. 다만 임재만 교수는 “공인중개사들의 영업권이 확보된다는 측면에서 허위매물이 줄어들 가능성은 높지만, 중개 보수가 급등할 우려도 있다”고 말합니다. 매물 정보를 많이 가진 소수의 사업자 위주로 시장이 독과점 상태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죠.
게다가 과장 광고라는 기준 역시 고객의 주관적인 입장에 따라 크게 다를 수 있겠죠. 처벌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지적도 나옵니다. 다양한 사업자가 참여하는 시장에서 단일한 매물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다음 모든 중개사들을 강제로 끌어 모으는 게 가능한지, 적절한지도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10년도 더 된 문제인데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고 있습니다. 법을 새로 만들고 통과시킬 때까지 많은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현행 법 테두리 안에서만이라도, 일단 악성 중개업소에 대해서만이라도, 정부 당국이 확실한 제재 의지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박엘리 KISO 기획팀장은 “공정위에 제출하는 악성 중개업소 보고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시정 조치나 제재가 강화된다면 허위매물 검증 시스템의 실효성은 더욱 높아 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 ‘싼 집’의 설움
지난해 9월 KISO에 접수된 허위매물 신고 건수가 역대 최고치로 치솟자, 관련 자료를 분석하는 등 대대적인 조사에 나선다고 밝혔습니다. 뒤늦었지만 허위매물로 불편을 겪었던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던 소식처럼 들렸죠. 하지만 내용을 뜯어 보면 결이 다릅니다.
11만 건이 넘었던 지난해 허위매물 신고량의 절반 가량은 7~9월 사이 집중됐습니다. KISO가 전수조사를 하지는 못했지만 특이한 점이 포착됩니다. 신고 내용이 전혀 없거나 점 하나만 달랑 찍어서 신고한 단순 의심 추정 신고가 굉장히 많았다고 합니다. 접수된 매물의 주소지 등을 추적해 본 결과 해당 아파트 단지의 입주민 카페 등에서 자신들의 아파트 가격을 낮게 책정한 부동산 중개업소를 집단적으로 신고한 흐름도 보였다고 하죠. 업계에서는 사실상 아파트 소유주 등의 가격 담합으로 인해 집값 급등을 우려한 정부가 부랴부랴 나선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부동산 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에서 하늘 높은 줄 모르소 치솟는 집값 문제는 분명히 중요합니다. 하지만 해마다 전셋값 월세 상승의 부담을 안고 이삿짐을 싸다가도 허위매물에 속을 썩혀 본 적이 있는 많은 국민들이 보기에는 어땠을까요. 공권력이 추구하는 시장 질서 유지란 수 억원, 수십 억원을 호가하는 고액 부동산만 해당된다고 여기는 건 지나친 비약일까요.
‘지ㆍ옥ㆍ고’ 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하방, 옥탑방, 고시원을 줄인 말로, 빈곤한 주거 환경을 전전하는 이들의 애환이 담긴 신조어입니다. 힘들게 발품을 팔며 찾아 다니는 이 지ㆍ옥ㆍ고마저도 허위매물 뒤범벅이라면 당사자는 어떤 심정일까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불편과 고통은 계속돼도 좋은 걸까요.
다가오는 3월, 본격적인 이사철을 맞는 이 새 봄에는 온라인 부동산 허위매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상 ‘오리지너’였습니다. ☞‘이사철 분노유발’ ①정부가 내팽개친 온라인 부동산 허위매물
조원일 기자 callme11@hankookilbo.com
김창선 PD changsun91@hankookilbo.com
자료조사 박서영 solucky@hankookilbo.com
이현경 인턴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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