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눈
막상스 페르민 지음∙임선기 번역
난다 발행∙128쪽∙1만2,000원
언어와 관념이 곡예를 부리는 것, 끝내 지고의 아름다움을 만나는 것. 시(詩)가 그렇다. 프랑스 작가 막상스 페르민(51)의 소설 ‘눈’도 그렇다.
소설은 “백색만 보입니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눈(雪)이 이야기를 연다. 19세기 말 일본, 소년 유코는 눈으로 시를 쓴다. 눈부신 흰빛의 단어, 눈은 그에게 시다. “투명한 눈/침묵과/아름다움 사이의 다리” 흰빛은 색이 아닌 연유로, 그의 시엔 색이 없다. “절망적으로 하얗기만” 하다. 아마도 없을 색을 찾아, 그래도 더 나은 시를 찾아 떠난 유코의 백색 여정이 소설의 줄기다.
소설은 판타지인가 하면, 길고 오랜 산문시인가 하면, 엄숙한 시론(時論)이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소설을 읽는 동안은 그 말을 이해할 것만 같다. 백색, 흰빛, 흰색, 은빛을 가려 쓴 번역은 연세대 불문학과 교수인 임선기 시인의 ‘작품’이다. 소설은 1999년 출간돼 프랑스에서 30만권 팔렸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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