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족수 미달 우려에 대안… 소액주주 주주권 관심↑
다음달 정기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그간 소액주주의 목소리가 커질 걸 우려해 오히려 전자투표를 외면하던 기업들이 돌연 ‘변심’한 배경은 무엇일까.
14일 한국예탁결제원(이하 예탁원)에 따르면 전날까지 예탁원의 주총 전자투표 시스템(K-eVote)을 이용하기로 계약한 상장사는 전체 상장사(2,108개사)의 58%에 달하는 총 1,217개(코스피 367개, 코스닥 850개)다. 코넥스 기업과 비상장사까지 포함하면 총 1,331개가 예탁원과 계약을 맺은 상태다.
예탁원은 작년부터 최근까지 신규 계약을 한 상장사가 114개나 되는 만큼 올해도 전자투표 시스템을 도입하는 기업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올해 주총부터 현대글로비스가 현대자동차그룹 중 최초로 전자투표를 도입하기로 했고, 신세계와 신세계푸드를 포함한 신세계그룹 7개 상장사도 전자투표를 실시한다.
주총 전자투표 시스템은 주주명부와 주주총회 의안 등을 예탁원 시스템에 미리 등록해 주주가 직접 주총장에 가지 않고도 온라인으로도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한 제도다. 2010년 5월 도입됐지만 초기 약 4년 동안 예탁원과 전자투표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불과 40개에 불과했다. 이마저도 대부분 페이퍼컴퍼니인 선박투자회사가 36개였다. 특히 당시엔 정족수 미달로 주주총회가 무산되지 않도록 주주 의결권을 예탁원이 대신 행사하는 제도인 ‘섀도보팅(Shadow Voting)’ 제도가 있어 굳이 기업들이 전자투표제에 관심을 둘 이유도 적었다.
상황은 2017년 섀도보팅이 폐지되면서 급격히 바뀌었다. 정족수 미달로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는 기업들이 속출하자, 기업 입장에선 가급적 많은 주주들의 주총 참여가 중요해졌고 전자투표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실제 2016년 732개였던 전자투표 계약 기업 수는 2017년말 1,103개로 급증했다.
최근에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등으로 소액주주의 주주권 행사에 사회적 관심이 늘어나자 전자투표로 눈길을 돌리는 기업들이 늘어났다는 평도 나온다. 과거 대기업들은 소액주주가 주총장에 적을수록 반대 목소리가 적어 회의를 일사천리로 끝내기 수월하다는 이유로 전자투표제 도입에 소극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소액주주의 움직임을 무작정 무시할 수 없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자칫 소액주주들을 ‘뭉개고’ 간다는 인상을 줄까, 기업 입장에선 전자투표 도입으로 소액 주주를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는 것일 수 있다”며 “여기에 국민연금이나 각종 기관투자자, 사모펀드들이 적극적으로 주총에 참여할 텐데, 아예 전자투표로 모은 소액주주들을 규합해 본격적으로 표 대결을 하겠다는 내심이 있을 수 있다”고도 분석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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