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박관용 전대연기 놓고 막말 공방
근거없는 ‘신북풍’ 동조한 후보들도 추태
양아치ㆍ좀비 청산이 새 지도부 첫 과제
“누군가 그런 얘기를 했다면 양아치 수준이다.”
자유한국당의 2ㆍ27 전당대회 대표 경선을 책임진 박관용 선거관리위원장이 얼마전 내뱉은 말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온건보수주의자인 박 위원장에게서 좀처럼 듣기 힘든 격앙된 표현이다. ‘누군가’는 홍준표 전 대표이고 ‘그런 얘기’는 “세간의 소문처럼 특정인의 아들 공천 때문에 무리에 무리를 범하고 있다는 말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그런 소문과 비대위의 무책임이 파행 전당대회로 몰고 가는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는 발언이다. 박 위원장이 ‘사심’ 때문에 남북이 합작한 이른바 ‘신북풍 음모’에 눈감고 자신의 요청을 무시한 채 대회를 강행하는 무리수를 둔다는 것이다.
‘노무현 탄핵소추안’을 의결한 꼬리표가 멍에 혹은 훈장처럼 따라다니는 박 위원장이지만, 그는 6선의 의회주의자이자 신사로 소문나 있다. 그의 입에서 ‘양아치’란 말이 나왔으면 볼장 다 봤다는 뜻이다. 사전적 의미의 양아치는 ‘품행이 천박하고 못된 짓을 일삼는 사람’을 일컫지만 정치적으로는 ‘말종’에 가까워서다. 강연재 등 홍준표 주변의 새까만 후배들이 이후에도 아들 실명까지 거론하며 모종의 거래설을 계속 퍼뜨렸으니 노정객으로선 억장이 무너졌을 것이다.
사실 전당대회 연기 주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의제였다. 2차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여권의 기획작품이라는 프레임도 터무니없지만, 댓바람에 전대 보이콧 카드를 꺼내든 것은 피해망상과 과대망상이 뒤섞인 ‘언더독’ 행태에 다름 아니다. 원칙과 명분은 둘째 치고 대의원 등 수만 명이 모이는 행사의 날짜와 장소를 바꾸고 TV토론 및 여론조사 등의 일정을 조정하는 일은 정무적 결정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야외 개최 등 편법을 찾아 연기한다 해도 그에 따른 비용과 부작용이 강행보다 작다고 보장할 수 없다. 흥행은 출연자들이 만드는 것이다. 공연이 관심을 끌면 손님은 저절로 모인다. 박 위원장이 ‘한심한 사람’들이라고 한탄한 이유일 게다.
결국 황교안 오세훈 김진태를 제외한 주자들이 모두 사퇴하고 대표 경선구도가 3파전으로 압축된 것을 보면 기탁금 등의 본전 생각에 핑계와 출구를 찾던 집단에 당 전체가 놀아난 느낌이 짙다. 그 중심에 홍 전 대표가 있고 나머지 주자들은 푸념만 하다 도망친 꼴이다.
그러나 양아치 수준까지 전락한 전당대회 연기 논란의 후유증은 크다. 분위기를 한껏 띄워야 할 시기에 내부에 총질하는 자해행위로 당 지지율 상승세에 찬물을 끼얹고 지지층의 실망과 개탄을 자초해서다. 경선 선거운동이 시작된 어제 발표된 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이 3.2%포인트나 급락해 25%대로 떨어진 것은 ‘컨벤션 효과’가 물건너갔다는 반증이다. 급락의 직접원인은 일부 의원들의 5ㆍ18 망언이나 박근혜 옥중정치, 웰빙 단식과 보이콧 습성 등이 꼽히지만, 보다 근본적 원인은 보수 및 중도진영의 마음을 사는 리더십의 실종과 부재다.
홍 전 대표는 후보 사퇴 직전 전대를 둘러싼 당내 논란이 ‘좀비(zombie) 정치’라며 “모두 힘을 합쳐 문재인 정권의 폭정에 대항해야 할 때 좀비정치나 하는 당을 바라보니 참담하다”고 독설을 날렸다. 하지만 지금껏 한국당에 영혼없는 좀비정치가 횡행했다면 절반의 책임은 그에게 있다. ‘저들의 술책’ 운운하며 전대 일정을 혼란에 빠트리고 박근혜 석방운동을 앞세워 TK에 구애하다 돌연 신보수주의를 외치는 등 좌충우돌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당 돌아가는 꼴을 보니 가슴이 터질 것 같다”(권영진 대구시장)는 절규가 나오겠는가.
양아치와 좀비 논란은 한국당의 어제와 오늘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내일의 과제를 제시한다는 점에서 나쁜 것만은 아니다. 5ㆍ18에 얽히고 박근혜에 치이며, 보이콧에 긁히고 배신론에 찔린 전당대회의 몰골은 초라해졌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문제를 안 이상 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문제는 홍 전 대표가 역설적으로 알려 준 양아치적 작태와 좀비 행태다. 답은 새 지도부 몫이다. 답을 피하면 벼랑이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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