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올 들어 ‘대북 압력’이란 표현을 삼가고 있다. 이달 말 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미국의 ‘단계적 비핵화’ 용인 기류와 향후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을 의식해 수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3일 아베 총리가 올해 북한에 대해 압력을 가해야 한다는 발언을 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 북한 문제와 관련해 “미국과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 긴밀히 연대하겠다”고만 언급했다. 정기국회에서도 북한에 ‘압력’이란 표현을 좀처럼 사용하지 않고 있다. 지난해 남북ㆍ북미 간 대화가 한창이던 시기에도 “북한에 대한 최대한의 압력을 유지해 구체적인 행동을 끌어내야 한다”, “일본이 국제사회를 리드해 압력을 가해 나가겠다”는 등의 발언을 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아베 총리는 북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도발이 잇따랐던 2017년엔 북한의 위협을 ‘국난(國難)’으로 규정, 대북 강경론을 주도한 바 있다.
일본 정부 내에서도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단계적 비핵화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고 도쿄(東京)신문은 전했다. 가나스기 겐지(金杉憲治)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은 9일 서울에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만난 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향해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쿄신문은 “비핵화를 전부 동시에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장관의 언급을 인용, 일본 정부도 미국이 협상 진전을 위해 단계적 비핵화 조치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대북제재와 관련해선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완화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 여전하다. 아베 총리는 4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의 완전한 이행 필요성에 대해 일치했다”고 말했다. 일본으로선 ‘미국 우선주의’를 강조하는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2차 북미 정상회담의 성과 도출을 위해 섣불리 북한에 많은 양보를 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구체적인 비핵화 로드맵 없이 영변 핵 시설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수준에서 미국 측의 대가가 지불될 경우 일본의 안전보장 토대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종원 와세다(早稲田)대 교수는 일본 정부의 태도와 관련해 “북미 정상회담 결과에 따라서는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도 이뤄질 수 있기 때문에 최근 북한을 도발하는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면서도 “대북제재에 대한 강경한 입장은 미국에 납치문제와 단거리미사일 폐기 등 일본의 요구를 거듭 환기하고, 북일 교섭 과정에서도 일종의 카드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전략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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