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인수에 망연자실
대우 협력사ㆍ주민들 “큰 타격 입을 것”
“지난 3년 구조조정과 임금삭감 등 뼈를 깎는 아픔을 견디며 이제 ‘보릿고개’를 넘기나 하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는데 현대중공업 인수설에 벼랑 끝에 내몰리는 심정입니다.”
현대중공업 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의 인수후보자로 확정 발표된 13일 거제 대우조선해양은 또 다시 불어 닥칠 대규모 구조조정에 대한 불안감에 근로자들이 토해 내는 긴 한 숨으로 가득 찼다. 협력업체들은 일감을 송두리째 (울산에) 빼앗길 수 있다는 절박감에 거의 ‘멘붕’에 빠졌다.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 대표 A(62)씨는 “현대는 대우의 우수한 기술력과 수주한 물량들을 깡그리 울산 현대 본사로 가져가고, 협력업체도 당연히 수직화 된 울산지역으로 몰릴 게 뻔하다”며 “이번 현대 인수 결정은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거제지역 조선업 경기에 찬물을 끼얹는 수준을 넘어 사형선고를 내린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대다수 대우조선해양 협력업체들은 대우조선이 회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수 후보자가 결정된 데 망연자실한 분위기다. 대우조선은 지난해 전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발주물량의 30% 가량을 수주했고, 2년 연속 7,000억~8,000억원 안팎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또 5,000%를 넘던 부채비율도 200%대로 낮아졌고, 올해 수주 전망이 밝아 목표 실적도 지난해보다 10% 상향 설정한 상태다. 조문석 대우조선해양 협력회사협의회 회장은 “협력사들이 4년간 단가를 동결하고, 자기 회사 직원 복리와 임금을 줄여가며 대우조선 정상화를 도왔는데 이런 허탈한 경우가 어디 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대우조선 협력사는 현재 모두 115개. 대우조선의 경우 거제를 비롯한 경남과 부산 등지의 협력사들로부터 각종 부품을 납품 받았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대부분을 자체 생산하거나 울산 등지의 기존 협력사를 통해 납품 받을 가능성이 커 앞으로 대우조선 협력사들은 물량이 크게 줄어들 것을 우려하고 있다. 거제지역 조선업계 관계자는 “거제 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우조선과 삼성중공업 등에 납품하는 창원과 김해, 부산 등지의 중소기업들도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업 불황으로 장기 침체에 빠진 지역 주민들도 기대 보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오후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이 찾아 일명 ‘옥태원(옥포+이태원)으로 불리는 거제시 옥포 1동 외국인특화거리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져 있는 거제의 민낯을 드러냈다. 대우조선 사원 아파트 인근인 이곳은 과거 잘나가던 ‘핫플레이스’였지만 이날은 ‘건물임대’ 문구가 붙은 상점들이 즐비했다. 인형뽑기 가게, 옷 가게 등 1층의 점포 3곳이 동시에 비어 있는 곳도 있었다. 한 상인은 “최근 몇 개월 사이 대부분 문을 닫았는데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인수돼 거제지역 경기가 어려워지면 줄줄이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사회도 뒤숭숭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시민들은 지역경제에 미칠 영향에 대한 걱정에, 대우조선 직원들은 고용 불안에, 협력업체는 물량 감소에 대한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옥태원’ 인근에서 20년 넘게 편의점을 운영해 온 최교술(48)씨는 “대우조선이 현대중공업에 인수되면 거제 물량이 송두리째 울산으로 넘어가 지역경제가 아주 힘들어 질 것이라는 게 대부분 지역주민의 생각”이라며 “밤에도 낮처럼 지나가는 사람이 없어 손가락으로 그 수를 셀 수 있을 정도인데, 앞으로는 그마저도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거제 옥포조선소 부근의 한 식당 사장은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라며 “어려운 조선 경기를 버티면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 기대마저 접게 됐다”고 말했다.
주택 매매가와 전세가격이 각각 38개월ㆍ32개월째 하락하고 있는 부동산업계도 시름이 더 깊어 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고현동의 부동산 중계업자 김모(56)씨는 “방이 비어 집세를 못 받아 대출금을 갚지 못하고 있는 집주인들의 문의 전화가 어제부터 계속 걸려오고 있어 현대중공업 인수와 동시에 지역 부동산 가격 폭락이 가속화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우조선 옥포조선소는 직영 인력만 9,700여명, 협력사 직원은 1만7,000여명에 이른다. 인구 25만명의 ‘조선도시 거제’에서 대우는 시 경제의 40%를 떠받치고 있는 절대적 존재다.
이정학 거제상의 사무국장은 “한 가족을 평균 4명으로 잡아도 직원과 그 가족만 12만명 가량이고, 나머지 13만명 정도도 직ㆍ간접적으로 대우조선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이 내는 세금이 거제시 전체의 40% 가량을 차지하고 있어 현대중공업이 인수해 본사가 거제를 떠나면 시 재정에도 큰 타격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현대 인수 저지’를 기치로 12일부터 여의도 산업은행 본사에서 릴레이천막농성에 들어간 대우조선 노조에도 긴장감이 고조됐다. 옥포조선소 곳곳에는 ‘산업은행 졸속매각, 대우조선 노동자는 온몸으로 거부한다’는 현수막이 걸렸고, 이날 오후 노조는 노조 임원진과 지역 정당, 시민단체 등이 참여한 매각 관련 범대책위원회를 꾸려 1차 회의를 진행했다. 신상기 대우조선 노조 지회장은 “최대 주주인 산업은행과 현대중공업의 밀실야합에 의한 졸속매각”이라며 “반대 투쟁과 총파업 상경 투쟁 등으로 맞서겠다”고 말했다.
노조의 가장 큰 걱정은 구조조정이다. 대우조선과 현대중공업은 LNG운반선을 비롯해 상선, 해양플랜트뿐만 아니라 특수선까지 업무가 거의 일치한다. 중복 부문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이유다. 최근 퇴사한 대우조선 전 임원은 “산업은행 측이 구조조정은 없다고 했지만 이를 곧이 들을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순차적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될 것이어서 직원들이 불안한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20여년 간 주인 없는 대우조선해양이 새 주인을 찾았다는 데 안도감을 표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이들 역시 현대 본사가 있는 울산으로의 ‘블랙홀’ 가능성에 대해선 우려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빅3’를 ‘빅2’ 체제로 전환, 출혈경쟁을 막고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정부와 산업은행의 주장과는 달리 봄 꽃이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 거제도의 봄은 이날 더 멀게만 느껴졌다.
거제=이동렬기자 dylee@hankookilbo.comㆍ권경훈기자 werthe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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