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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울린 대한독립만세’ 3·1운동 북한 사적지 821곳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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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도 울린 대한독립만세’ 3·1운동 북한 사적지 821곳 찾아냈다

입력
2019.02.13 16:30
수정
2019.02.13 21:58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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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기념관 최초 전수조사, 남북한 공동현지조사 추진

1919년 3·1운동 당시 선열들은 서울 동대문 성루에 올라 독립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19년 3·1운동 당시 선열들은 서울 동대문 성루에 올라 독립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1919년 3월 1일 오후 3시쯤 평양경찰서 앞. 장대현교회, 남산현교회, 설암리 천도교구당에서 출발한 시위대가 속속 모여들었다. 장로교, 감리교, 천도교 등 종교단체 3곳이 주도한 독립 만세 시위였다. 시위대는 해질녘까지 혈성가(血誠歌)를 소리 높여 부르고,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만세를 목놓아 외쳤다. 시위대가 던진 돌에 경찰서 창문이 깨지자, 일본 경찰과 군은 총을 쏘고 쇠갈고리를 휘두르며 진압했다. 시위대는 도망가지 않고 몸으로, 피로 맞섰다. 부상자가 속출하고 수백 명이 검거됐지만, 시위는 9일까지 이어졌다.’

3·1운동 첫날, 독립에의 절절한 외침은 한반도 전역을 흔들었다. 평양경찰서를 비롯해 모락장(평남 강서군), 맹산(평남 맹산군), 성진읍(함북 성진군), 해주(황해도), 송도(경기도 개성군) 등이 북한의 대표적 만세 시위 현장이다.

독립기념관은 13일 북한의 3·1운동 사적지를 최초로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만세시위가 벌어진 거리 475곳과 산야 16곳, 거사 주역들이 시위를 기획한 가옥 77곳, 일제가 시위대를 무력으로 탄압한 건물 244곳 등 821곳이 확인됐다. 남북관계 경색으로 남북 학술 교류가 중단된 탓에 현지 조사는 하지 못했다. 대신 일제의 탄압 근거 자료인 조선소요사건관계서류, 3·1운동 참여자 판결문 등 문헌을 대조하며 장소를 특정했다.

독립기념관은 이번 조사를 기초 삼은 남북 공동 현지조사를 제안할 예정이다. 항일 의병, 계몽 운동, 학생 운동, 농민∙노동자 운동 등 다른 독립운동 관련 북한 사적지도 조사할 방침이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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