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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영변 진달래꽃

입력
2019.02.12 18:00
수정
2019.02.13 10:0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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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역에 살거나 가 본 적이 없는 이들에게 평안북도 영변(寧邊)은 김소월 시인의 ‘진달래꽃’으로만 익숙한 곳이다. 평북 구성(龜城)이 고향인 시인이 떠나는 님에게 사뿐이 즈려 밟고 가라며 뿌리겠다고 한 것이 영변 약산(藥山)의 진달래꽃이었다. 사실 영변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한 난공불락의 요새다. 조선 실학자 이중환은 ‘택리지’(擇里志)에서 영변을 ‘평안도에서 외적을 방어할 만한 곳은 여기 뿐’이라며 ‘철옹성’으로 표현했다. 신증동국여지승람도 약산을 ’멧부리가 서로 사면을 겹겹이 에워싸 모양이 쇠 독과 같다’고 설명했다.

□ 북한은 이 천혜의 요새를 핵 개발의 요람으로 탈바꿈시켰다. 영변이 세계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된 것은 1989년 영변 핵 시설 사진이 공개되면서부터다. 미국 정보기관은 이미 82년 영변에 원자로로 추정되는 구조물이 건설되는 것을 포착했다. 87년엔 재처리 시설의 전형적 형태인 방사능 차폐벽 설치가 확인됐다. 원자로에서 핵연료를 연소시키고 남은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추출한 플루토늄으로 만드는 게 플루토늄탄(핵폭탄)이다. 핵폭발을 위해서는 고성능 폭약을 이용한 기폭장치가 필요한데 영변에는 이를 위한 고폭실험장도 건설됐다.

□ 영변엔 65년 소련이 건설한 IRT-2000 연구용 원자로, 79년부터 북한 자체 기술로 세워진 5㎿ 실험용 원자로, 85년 착공된 50㎿ 원자로가 있다. 89년엔 영변 옆 태천(泰川)에 200㎿ 원자로도 착공됐다. 영변이 ‘북한 핵시설의 심장부’로 불리는 이유다. 그러나 북한은 90년대부턴 플루토늄탄이 아닌 우라늄 방식 핵무기 개발로 전환했다. 자연 상태의 우라늄에서 고농축 우라늄을 추출해 핵무기를 만드는 방식이다. 비용이 많이 들지만 시설 규모가 크지 않아 은폐에 용이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하다.

□ 27일부터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의 실질적 비핵화 조치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게 영변 핵 시설 폐기다. 그러나 북한은 이미 영변 외에 고농축 우라늄 생산 기지를 여러 곳에 갖춰놓았다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북한은 우라늄탄보다 폭발력이 더 큰 수소탄 완성까지 선언한 상태다. ‘하노이 서밋’이 영변 핵 시설 폐기를 포함한 전체 비핵화에 대한 로드맵과 시간표를 반드시 제시해야 하는 이유다. 2019년에는 영변에 평화의 진달래꽃이 만발하기를…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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