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지도'와 '왜 시계태엽 바나나가 아니라 시계태엽 오렌지일까?'

#쥘 베른의 소설 ‘80일 간의 세계일주’. 80일만에 세계일주를 할 수 있다고 장담하는 바람에 2만 파운드를 걸고 여행에 나서게 된 영국 신사 필리어스 포그의 모험담을 그렸다. 온갖 수단과 탈것을 이용해 아시아로, 미국으로, 다시 영국으로 돌아오는 포그의 모험을 단 한 장의 지도 안에 표현할 수 있다면?
#쥘 베른은 1871년 신문에 실린 세계일주 관광 상품에서 소설을 착안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연재하기 1, 2년 전 이미 “80일 안에 세계를 일주하겠다”고 선언한 실존 인물이 있었다면? 게다가 그 인물이 영국에 전차를 최초로 도입한 철도업계의 거물이었다면?
‘80일간의 세계일주’부터 ‘햄릿’ ‘모비딕’ ‘고도를 기다리며’까지, 명작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 헤매고 싶은 독자를 위한 안내서 두 권이 나왔다. 우선 미국 뉴욕의 일러스트레이터 앤드루 더그라프가 소설 속 세계를 한 장의 지도로 재창조한 ‘소설&지도’(비채). 제목처럼 ‘지도가 된 소설’로 가득한 책이다. 저자는 언어로 표현된 방대한 세계를 지도 한 장에 담았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저자의 아이디어가빛난다. 토끼 스물 두 마리가 등장하는 ‘워터십 다운의 열한마리 토끼’를 저자는 각양각색인 토끼들의 동선으로 표현했다. 망망대해 위 배와 고래만 등장하는 소설 ‘모비딕’의 지도에는 ‘피쿼드 호’와 ‘모비딕’의 내부 구조가 펼쳐진다. 압권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바벨의 도서관’이다. 육각형 방이 무한히 쌓인 가상의 도서관을 그림 한 장으로 표현한 상상력에 감탄하게 된다.
‘왜 시계태엽 바나나가 아니라 시계태엽 오렌지일까?’(현대문학)는 소설의 ‘제목’에 숨겨진 뒷얘기를 풀어내며 소설 속 세계의 더 깊은 곳으로 독자를 이끈다. 저자는 영국 작가이자 문학 전문 칼럼니스트다.

부자 갈등을 다룬 ‘햄릿(Hamlet)’이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라는 건 누구나 안다. 저자는 셰익스피어 아들의 이름이 ‘햄닛(Hamnet)’이었다는 소소한 사실을 알려준다. ‘모비딕’이라는 이름은 뱃사람 30명을 익사시킨 ‘모카 딕’이라는 알비노 향유고래에서 따왔단다. 소아 성애 문제의 대명사 격인 ‘롤리타’를 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저자에 따르면, 하인츠 폰 리히베르크라는 언론인이 쓴 동명의 단편소설 ‘롤리타’의 혐의가 더 짙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속 ‘고도’는 도대체 누구인지, 인류멸망의 날로 점지된 ‘1984’속 1984년은 왜 하필 1984년이었는지를 비롯해, 저자는 기발한 의문에 진지한 답을 내놓는다. 두 책에 소개되는 작품이 제법 겹친다. 안내서 두 권을 나란히 펼쳐놓고 읽어 볼 것을 권한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