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땅에 정착한 지 137년이 흐른 화교. 정착 역사가 오래된데다가 외모만 보면 한국인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정을 모르는 이라면 화교들이 과연 차별을 느낄지에 의문을 품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물론 화교들은 “예전보다는 처우가 많이 나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이는 ‘상대적인 개선’이라는 설명이 뒤따른다. 과거의 차별이 워낙 심했기 때문이다.
1936년부터 1999년까지 화교는 토지소유에 제한을 받았다. 약 165㎡(50평) 이상의 상업용 토지(거주목적은 약 661㎡(200평)로 제한)를 보유할 수 없었으며 부동산 임대업도 허용되지 않았다. 2002년까지는 영주권도 부여되지 않아 3년마다 거주 허가를 새롭게 받아야 하는 등 법적 지위도 불안정했다. 주변에서 ‘짱깨’, ‘되놈’ 등 중화권 사람에 대한 비하 발언을 면전에서 듣는 일도 다반사였다.
화교들의 차별시정 요구가 지속되면서 차별적인 법 조항이 수정ㆍ폐지되고, 화교에 대한 인식도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크고 작은 어려움이 남아 있다고 이들은 하소연한다. 화교들은 법무부가 지난해부터 영주권자에게 10년에 한번씩 영주증 재발급 의무화 조항을 신설한 조치를 문제 삼았다. 가이드로 일하는 3세대 화교 조모(47)씨는 “기존에는 재발급을 받을 필요가 없었는데 10년마다 갱신을 받으라고 하니 번거로운 것은 물론 수수료(3만원)도 내야 한다”고 아쉬워했다.
직업과 소득이 분명해도 은행에서 담보 없이는 신용대출을 받기 어려운 점에 불편을 호소하는 화교들도 적지 않다. 왕가흥(王家興ㆍ52)씨는 “생애 첫 주택 구입자에게 저리로 대출해 주는 제도도 있지만 화교는 해당 사항이 없다”고 전했다. 은행이 신용대출을 꺼리는 이유는 화교들이 대출금을 상환하지 않고 한국을 떠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지만, 사실 화교만큼 출국이 어려운 집단도 많지 않다. 이들이 소지한 대만여권에는 현지 대만인들과 달리 주민등록번호가 찍혀 있지 않아서 대만인들이 받는 비자면제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왕가흥씨는 “업무상 동남아 지역에 출장을 갈 일이 많지만 출장은 포기하고 산다”고 했다. 출국 전 비자를 받거나 외국 공항에서 사후 비자를 받을 수도 있지만, 번거롭고 비용도 부담된다. 화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인도 무비자로 입국할 수 있는 대만에 들어갈 때조차 입국허가를 받아야 한다. 화교들이 자신들이 소지한 대만여권을 가리켜 ‘난민 여권’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곽원유(郭元有ㆍ72) 한국화교협회 총무는 “화교가 한국 국적으로 귀화를 하면 이름을 현지어 발음대로 호적에 올리라고 강제하는 것을 고쳐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국식 한자 발음에 따라 ‘이소룡’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했던 화교가 한국으로 귀화하면 원치 않더라도 이름이 ‘리샤오룽’으로 바뀌는 식이어서 일상에서 불편을 겪는다는 것이다. 곽원유 총무는 “이런 문제를 제기하면 ‘개명 신청을 하면 되지 않냐’고 답을 하는데, 이 정도 배려는 사전에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아쉬워했다. 바꾸는 데 큰 돈이 들지 않는 불편함부터 한 가지씩 줄여주는 일은 공존을 위한 첫 걸음일 수 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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