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소방서 현장 조사서 입수… 최종 결론은 ‘인재’ 
 
국일고시원 화재 때 불이 발생한 곳으로 보이는 301호. 가로 1.7m 세로 2.15m의 작은 방이다. 종로소방서 제공

“저희요? 스프링클러 없어요. 설치하는데 1,000만원 넘게 드는데 어떻게 해요. 임대료도 내야 하는데 그거 설치하면 꼼짝없이 문 닫아야 해요.”

13일 서울 시내에서 고시원을 운영하는 A씨는 ‘왜 스프링클러가 없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난해 11월 7명의 목숨을 앗아간 국일고시원 참사가 발생했음에도 고시원 상황은 변한 게 없었다. 20여 년 동안 고시원을 운영해왔다는 A씨에게 국일고시원 얘길 꺼내자 “대형빌딩은 소방 설비를 갖춰 놓고도 불이 나고 수십 명씩 죽는데, 왜 고시원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말했다.

본보는 국일고시원 화재 이후 종로소방서가 작성한 ‘화재현장조사서’를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했다. 최종 보고서 격인 이 조사서의 결론은 예상대로 ‘인재’였다. 좀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는 뜻이다. 조사서 내용을 토대로 고시원 안전 3원칙을 뽑았다.

국일고시원 복도는 폭이 0.8m에 불과했다. 2015년 고시원 복도 폭이 최소 1.2m가 되도록 건축법 시행규칙을 고쳤으나 국일고시원은 이에 해당하지 않았다. 종로소방서 제공

가장 절박한 일은 스프링클러 등 소방시설 설치 지원이었다. 고시원에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한 다중이용업소안전관리특별법은 2009년 7월 8일 시행됐다. A씨의 고시원처럼 20년 된 고시원은 적용 대상이 아니다. 이런 고시원은 전국 1만1,892개 가운데 2,329개 정도로 파악된다. 화재 위험에 취약한 노후화된 고시원일 수록 오히려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이 때문에 노후 고시원들이 소방시설을 갖추도록 지원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꼽힌다.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과 관계자는 “국비와 지방비 등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비용의 3분의 2를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 중”이라며 “지원 근거 마련을 위해 관련 법 개정 작업 등도 준비 중”이라 말했다. 2012년부터 노후 고시원 지원을 해온 서울시도 대상과 폭을 더 확대할 방침이다.

국일고시원 객실 벽은 천장 상부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천장과 벽 사이 빈 공간 사이로 자유롭게 불과 연기가 넘나들었다. 종로소방서 제공

대충 가벽을 세워 방을 구획한 고시원의 ‘벌집형 구조’도 개선해야 할 점으로 꼽힌다. 국일고시원에서 화재가 발생한 3층엔 가로 1.7m 세로 2.15m 에 불과한 객실 29개가 빽빽하게 들어 차 있었다. 복도 폭은 0.8m에 불과했다. 촘촘하게 들어찬 방을 가른 건 목재 틀에 석고보드를 넣은 벽이었는데, 그나마도 천장과 닿지 않고 뻥 뚫려 있었다. 화염과 유독가스는 이 빈 공간을 통해 제 마음대로 번져 나갔다.

오래된 고시원의 내부 구조 자체를 이제 와 모두 다 뜯어고칠 수는 없다. 하지만 소방당국이 이 부분만이라도 지속적으로 지도 감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진주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소방시설법에 따라 소방당국의 조사를 용역업체가 대행하다 보니 제대로 점검, 보고가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며 “뻥 뚫려 있는 천장처럼 건축법의 적용을 받는 요소들만이라도 소방당국이 직접 나서서 확인, 감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일고시원 출입구 맞은 편에 위치한 피난구실. 완강기가 있지만 자욱한 연기에 잡다한 물건들 때문에 이곳을 통해 탈출할 수 없었다. 종로소방서 제공

‘골든 타임’의 중요성도 다시 한번 강조됐다. 조사서도 인명 피해의 가장 원인 중 하나로 ‘신고 지연’을 지목했다. 불이 나자 최초 목격자는 정수기 물통 등을 이용해 진화를 시도하다 실패한 후에야 고시원 사장에게 화재 사실을 알렸다. 사장은 2층 거주자들을 대피시킨 뒤에야 소방서에 신고했다. 화재 발생 추정 시각으로부터 약 15분이 지난 시점이었고, 소방서 출동엔 5분의 시간이 더 소요됐다. 소방차가 도착했을 때 이미 불길은 건물 외부로 치솟고 있었다. 소방서 관계자는 “다중이용시설의 경우 일단 신속한 신고가 먼저라는 점을 널리 알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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