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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눈치 보며 쓴 보고서는 죽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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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눈치 보며 쓴 보고서는 죽은 문서”

입력
2019.02.10 15:22
수정
2019.02.10 19: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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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의 법칙’ 낸 참여정부 행정관 백승권씨

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백승권 대표는 보고서 혁신으로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만난 백승권 대표는 보고서 혁신으로 우리 사회 민주주의를 한 단계 끌어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이한호 기자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보고서 쓰기는 고역 그 자체다. 유일한 기준은 상사의 취향. 보고서를 쓸 때마다 느는 거라곤 상사 마음을 읽는 능력뿐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보고서가 작성되고, 지워지고, 폐기되고, 잊힌다. 보고서에 목을 매느라 낭비되는 것들이 너무 많다.

백승권 커뮤니케이션컨설팅앤클리닉 대표는 이런 보고서 문화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역설한다. 그는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홍보수석실 행정관으로 근무하며 경험한 ‘청와대 보고서 매뉴얼’을 민간 기업과 정부 부처, 공공기관에 전파하는 실용 글쓰기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10년 간의 현장 강의 내용을 담아 최근 보고서 쓰기의 기본을 다룬 책 ‘보고서의 법칙’을 냈다. 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백 대표를 만나 보고서 혁신 팁을 들어 봤다.

박 대표는 대한민국 보고서 형식의 통일부터 주문했다.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하잖아요. 양식 표준화로 쓸데 없이 형식에 집착하는 소모적 시간을 줄여야 합니다. 그래야 내용에 집중할 수 있지요.” 백 대표 역시 ‘중구난방 보고서’로 고생했다. “2005년 청와대에서 일하면서 각 기관의 보고서를 정리해 노무현 전 대통령께 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놀랍게도 정부 부처마다 보고 형식이 전부 다르더군요. 당시 청와대 업무관리 전산 시스템인 ‘이지원 시스템’으로 대통령이 보고서를 열람한 시각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게 보통 새벽 2시, 3시였어요. 죄송스러웠지만 보고서 양을 줄일 순 없잖아요. 그래서 형식이라도 통일해 보자고 만들어진 게 청와대 보고서 매뉴얼이었습니다.”

‘매뉴얼’이라고 거창한 건 아니었다. ‘용건을 제목에 밝히고, 추진 배경, 현황, 문제점, 해결 방안 순으로 쓴다’는 게 골자였다. “이런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은 경우가 허다했다”는 게 백 대표의 설명이다. 물론 형식만 갖춘다고 잘 쓴 보고서는 아니다. 그는 보고 단계마다 작성자의 ‘판단’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상부에서 내린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 자료로만 활용되는 게 보통이죠. 작성자가 주인 의식을 갖기 힘든 구조라는 얘기예요. 작성 단계에서 문제점이 발견돼도 수정이나 의견 첨부 없이 보고 라인을 타고 쭉 올라가요. 결국 보고서의 최종 목적인 ‘업무’는 실패합니다. 후임자가 과거 보고서를 참고해 써 올리니까 똑같은 업무 실패가 반복되는 거고요.“

이한호 기자
이한호 기자

청와대의 경제정책 결정 외압 의혹을 제기한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도 어쩌면 이 같은 ‘불통 보고서 문화’의 희생자일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은 해당 정책 담당자였지만, 전체적인 정책 정보를 알지 못했어요. 큰 그림은 이렇고, 그 속에서 신 전 사무관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공유하지 않은 기재부와 청와대의 잘못도 있다고 봐요.”

청와대도 보고서 혁신 필요성을 체감했는지, 청와대 직원들의 공부모임인 상춘포럼이 최근 백 대표에게 보고서 쓰기 강연을 요청했다. 책을 챙겨 본 문재인 대통령의 ‘특별 지시’였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보고서를 쓰기도, 읽기도 어려운 이유는 자기 생각을 담아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사 눈치 보는 데 급급해 만든 보고서는 죽은 문서나 다름없습니다. 보고서 혁신은 구성원들의 의견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민주적 문화가 뒷받침될 때 가능해요. ‘보고서가 그냥 보고서지’ 할 게 아닙니다. 보고서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합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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