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인 문정인 연세대 교수는 9일 이달 말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리는 2차 북미 정상회담과 관련해 “빅딜이든 스몰딜이든 그림이 그려져야 하고 어떤 형태로든 (비핵화의) 로드맵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문 특보는 이날 도쿄 게이오(慶應)대에서 열린 동아시아연구소 현대한국연구센터 개소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의 기조발제를 통해 “(북미 간) 주고 받을 게 무엇이고 언제까지 어떻게 하겠다는 시간표가 작성된 상태에서 (북미관계가) 나가야 예측 가능해진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러면서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만나 (비핵화) 시간표를 짜고 서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풀어가겠다는 내용이 나와야 안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선 북한의 실질적인 선행 조치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가시적인 선행 조치가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적으로 체면이 서야 상응조치가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원하는 ‘행동 대 행동’ 원칙에 따른 동시 교환으로 가더라도 첫 단추를 꿰는 행동은 북한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그는 “북한이 판문점 선언(1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요구를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모든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폐기할 의사가 있다고 말할 정도로 진일보했다”면서도 “지금까지는 말뿐이고 행동은 없었으니 이제는 북한이 실질적인 행동을 보여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문 특보는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의 2박3일 간 평양 실무협상에 대해선 “북한은 ‘행동 대 행동 원칙으로 동시 교환하자’, 미국은 ‘선 핵 폐기 후 보상’을 요구하고 있는데 이 간극을 얼마나 줄였느냐에 달려 있다”고 했다.
다만 비핵화는 ‘핵 동결→신고→사찰→검증→폐기’ 순서를 따르는 것인데, 북한 입장에선 현재 미국과 적대 관계인 상황에서 핵 리스트를 주는 것은 미국에 공격 리스트를 주는 것인 만큼 일단 양국 간 신뢰부터 쌓자고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대해 “미 정보당국의 추산에 따르면 북한이 핵 탄두를 60~65개를 갖고 있다고 하는데, 만약 북한이 이보다 적은 숫자를 신고하면 미국은 속임수를 쓴다고 할 것”이라며 “그렇게 되면 협상의 판이 완전히 깨질 것이니 북미가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의 영변 핵 시설 폐기 시 가능한 미국의 보상 조치 범위와 관련해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제재를 포괄적으로 풀어줘 버리는 것은 어려울 것”이라면서 “이보다 남북 경제협력을 예외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느냐는 게 대체적인 생각”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주한미군 철수 논의 여부에 대해선 “한국 정부는 주한미군이 북한에 대한 적대적 정책을 갖지 않는 한 종전선언과 평화선언을 만드는 데 걸림돌이 안 된다는 입장이고 북측도 이를 이해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주한미군 문제는 한미 두 주권국가 간 합의사항이니 종전선언, 평화선언과 무관하다”고 말했다.
북한이 미국의 핵 우산 제공 중단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에 대해선 “북한이 현 단계에선 공식적으로 그런 주장을 하고 있지 않다”며 “다만 북한이 비핵화 과정으로 가게 된다면 북미관계 개선에 따라 변수로 작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북한의 인권문제와 관련해선 “현 단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신뢰가 쌓이면 인권과 납치문제 등을 얘기하게 될 것”이라며 “북한이 원하는 북미수교 수립을 위해선 미 상원의원 3분의 2 이상 승인이 필요한데, 이는 인권문제에 대한 언급 없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 교수는 한국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서 일본 정부를 배제하려는 게 아니냐는 일본 측 관점에 대해선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세 차례 남북 정상회담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요청으로 납치문제를 제기했고,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일본에 파견해 아베 총리에게 회담 결과를 설명했다”며 “일본 언론이 보는 측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일본 외무성은 유럽연합(EU) 등에 가서 북한문제 해법에 대한 문 대통령의 주장을 봉쇄하며 지나친 행동을 했다”고 지적하고 “일본이 부정적인 외교만 적극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판(한반도 화해)이 되는 방향으로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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