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대북제재 완화는 비핵화 이후”라고 재차 못박았다. 이달 말 2차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지만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갈망하는 선물을 섣불리 내놓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다.
로버트 팔라디노 국무부 부대변인은 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이룰 때까지 유엔의 제재를 이행하고 집행하는 데 있어 지속적으로 공조하고 있다”면서 “제재 완화가 비핵화에 뒤따를 것이라는 점을 매우 명확히 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발표한 북한의 FFVD가 여전히 미국의 목표이고 여기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FFVD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약속”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앞서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는 지난달 31일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플루토늄과 우라늄 농축시설 폐기는 물론 북한이 포괄적으로 신고한 핵 시설을 해외 전문가들이 사찰하고 검증하는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한바 있다. 단순히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거나 핵 동결에 그치는 수준으로는 어림없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북한에 제공할 상응조치로 북미간 신뢰구축과 한반도 평화체제, 적정 시점에서의 대북투자 지원 등을 거론했다. 2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동시에 논의하는 단계로 발전하게 되더라도 FFVD라고 부를 정도의 진전이 없는 한 대북제재의 고삐는 꼭 쥐고 있겠다는 의미다. 비핵화 프로세스를 시작하는 대가로 제재를 완화해달라고 일관되게 요구해온 북한의 입장과는 차이가 크다.
정작 중요한 대북제재를 맨 뒤로 돌려놓고 북한을 애타게 만드는 건 협상을 앞둔 미국의 전형적인 수법이다. 지난해 12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내년 1월 초 북미정상회담이 열릴 수도 있을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면서도 “대북제재는 변함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후 지난달 워싱턴DC를 방문한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은 즉각적인 대북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신경전을 벌였다.
이와 관련, 조윤제 주미대사는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 조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미국 측에서도 과감한 상응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조 대사는 이날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에서 27~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 그에 앞서 현재 평양에서 진행되는 북미 실무협상 등과 관련해 북한의 과감한 비핵화 조치 견인을 위한 미국의 과감한 상응 조치 검토 필요성을 미국 측에 자주 설명해왔다면서 이 같이 말했다. 채찍보다는 큼지막한 당근을 먼저 집어줘야 북한이 움직일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다만 미국이 대북제재에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앞장서 제재 완화를 요구하기에는 부담이 적지 않다. 이에 구체적인 상응조치로 북미 간 연락사무소 개설 등이 줄곧 거론돼 왔다. 물론 북한이 제재 완화가 쏙 빠진 내용에 선뜻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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