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역대 최대, 3년째 10조원 넘어… “올해도 초과세수로 추경” 관측도
지난해 세금이 정부의 당초 예상보다 25조원 이상 더 걷힌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한국경제가 2.7% 성장에 그치고 조선ㆍ자동차 등 제조업 구조조정으로 일자리가 수십만 개 사라지는 동안 나라곳간은 오히려 풍족해진 셈이다. 경기침체에 씀씀이를 늘려야 할 정부가 거꾸로 나랏돈 수십 조원을 곳간에 더 쌓으며 사실상의 ‘긴축 정책’을 펼친 셈이어서 재정운용 원칙에 크게 벗어난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세수입은 전년(265조4,000억원)보다 28조2,000억원(10.6%) 늘어난 293조6,000억원이었다. 정부가 2018년 본예산을 수립할 당시 예상치(268조1,000억원)를 25조4,000억원이나 초과한 것이다. 정부 수립 이래 가장 많은 국세 초과세수로, 2016년(+19조7,000억원)과 2017년(+23조1,000억원)에 이어 10조~20조원대 세금이 더 걷히는 상황이 3년째 반복됐다.
반도체와 부동산이 세수 호황을 견인했다. 먼저 법인세는 지난 2017년 반도체 호황 등으로 기업 실적이 개선되며 정부 예상(본예산)보다 7조9,000억원 더 걷혔다. 실제 2017년 코스피 전체 상장법인의 영업이익은 100조6,000억원으로, 전년보다 48.9% 늘었다. 작년 4월 양도소득세 중과조치(기본세율 6~42%에 다주택자는 10~20%포인트 추가) 시행 직전 ‘세금폭탄’을 피하고자 주택과 토지를 파는 사람이 늘어나며 양도소득세가 7조7,000억원 더 걷혔다. 근로소득세는 근로자의 명목임금이 5.3%(2017년 317만→2018년 334만원) 상승한 영향 등으로 2조3,000억원 늘었다. 소득세 최고세율이 인상(40→42%)된 점도 근로소득세 증가에 영향을 미쳤다. 또 작년 주식 거래대금이 1년 전보다 약 28% 늘며 증권거래세도 2조2,000억원 더 징수됐다.
이에 따라 예산에서 쓰고 남은 돈을 뜻하는 ‘세계잉여금’은 지난해 13조2,000억원이나 남았다. 2007년(15조3,000억원) 이래 역대 두 번째 규모다. 이중 10조7,000억원(일반회계)은 국가재정법에 규정된 우선 순위에 따라 지방교부세 정산→공적자금 출연→채무상환→추경편성 순으로 사용될 예정이다.
◇반복되는 세수추계 실패, 왜?
정부는 이듬해 세금이 얼마나 걷힐지 추산한 뒤 그걸 바탕으로 예산(지출)을 편성해 매년 9월 국회에 제출한다. 아무리 정교한 추계 모형을 적용해도 실제 경제 상황에서는 수많은 변수가 돌발하는 터라 추계와 실제 세수간 괴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더구나 최근 들어 거시경제와 세수 흐름이 엇갈리면서 추계가 더욱 까다로워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경상성장률(물가상승률을 반영한 경제성장률)과 국세수입 증가율이 유사한 흐름을 보였다. 하지만 2013년 이후 경상성장률은 4~5%대 수준을 유지한 반면 국세수입 증가율은 -0.5~11%까지 들쭉날쭉했다. 이는 △법인세, 부동산세 등 경기변동에 민감한 세수가 전체 세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고 △고소득자ㆍ초(超)대기업에 대한 세수의존도가 커졌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성장률 등 거시변수를 토대로 세수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어려워진 셈이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교수는 “과거에는 추계를 할 때 거시경제 흐름만 좇으면 됐는데, 이제는 산업이나 기업 등 미시적인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현실적인 한계를 고려해도 3년 연속 수십 조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을 면하긴 어렵다.
재정건전성을 중시하는 기재부의 ‘속내’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기재부가 박근혜 정부 당시 세수예측을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했다가 2012~2015년 4년 연속 대규모 ‘세수펑크’(정부 예상보다 세금이 덜 걷히는 현상)를 겪은 이후부터 일부러 세수추계를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훈 서울시립대 교수는 “구조적인 변화를 감안해도 3년 연속 수십 조원의 초과세수가 발생한 것에는 정부의 과소추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장률 하락 부추긴 ‘긴축 재정’
통상 경제가 예상보다 호황이면 세금이 더 걷혀 결과적으로 초과세수가 경기과열을 식혀주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지난해 한국 경제는 2.7%(잠정) 성장에 머물며 당초 정부의 전망치(3.0%)에 미치지 못했다. 이 같은 경기둔화 국면에선 정부 지출을 과감하게 늘려 민간에서 돈이 돌게 해야 하는데 정부는 오히려 반대로 움직인 셈이다.
이상민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가령 정부가 10조원을 세금으로 걷어서 10조원을 쓰기로 계획을 했는데, 예상보다 세금 5조원이 더 걷히면 그만큼 민간자금을 빨아들이고 내수를 위축시키게 된다”고 설명했다. 경제가 어려울 때 긴축 재정을 한 꼴이란 얘기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해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17년과 2018년) 2년 연속 초과세수가 20조원이 넘었는데, 늘어난 국세수입을 경기회복을 위해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초과세수가 유발하는 재정운용의 ‘난맥상’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추경’(11조원ㆍ2017년 11월)과 ‘청년 일자리 추경’(3조8,300억원ㆍ2018년 5월) 등을 편성하며 모두 초과세수를 활용한 바 있다. ‘보수적인 세수추계 및 제한적 재정지출→경기둔화→초과세수→추경’이 연례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당초 본예산을 편성할 때 국가재정의 우선순위에서 밀렸거나, 애초 예산 심의를 통과할 수 없는 사업들이 대거 추경에 포함되게 된다”며 “예산배분의 비효율을 초래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정부가 경기활력 제고에 전념하고 있는 만큼 올해도 초과세수를 활용해 추경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상반기, 특히 1분기(1~3월)에 재정 조기집행을 압박감 있게 진행하려 한다”며 “추경은 아직 고민 대상이 아니다”고 부인했다.
한편, 초과세수에 따른 비판이 거세지자 기재부는 세수추계 시스템을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먼저 국세청, 관세청,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등 국내 주요기관과 ‘세수추계 태스크포스(TF)’를 꾸려, 각 기관별 세입 전망치를 종합해 이듬해 세입을 예측하기로 했다. 또 매년 9월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때 △어떤 근거로 세수를 추계했는지 △전년도 세수추계에서 오차가 발생한 이유는 무엇인지 등의 분석자료를 담을 계획이다. 그 동안 기재부는 세수추계의 핵심인 거시경제 변수 값 등을 일절 공개하지 않아 국회에서 ‘깜깜이’ 추계라는 비판을 받았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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