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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명의 이슬람 문명기행] 이슬람은 테러의 종교? 획일적 ‘정체성 규정’이 편견 불러

입력
2019.02.09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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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무슬림은 폭력적인가 

※ 여러 뉴스를 통해 이슬람을 접하지만 우리에게 이슬람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입니다. 이슬람국가 모로코에서 이슬람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정명 명지대 교수가 우리가 잘못 알고 있거나 모르고 있는 이슬람 문명에 대한 이야기를 매주 들려드립니다.

지난해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청)은 예멘난민 신청자 484명 중 23명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했다. 지난해 9월14일 체류허가를 받은 예멘인들이 출입국청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지난해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출입국청)은 예멘난민 신청자 484명 중 23명에 대해 인도적 체류 허가를 했다. 지난해 9월14일 체류허가를 받은 예멘인들이 출입국청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예멘 난민 문제는 지난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이목을 사로잡은 가장 뜨거운 화제 중 하나다. 예멘은 2015년 수니파 정부군과 시아파 후티 반군 사이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혼돈에 빠져들었다. 중동의 맹주 자리를 놓고 다투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각각 예멘 내 수니파와 시아파를 지원하면서 내전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됐다. 약 19만명에 가까운 난민이 발생했고, 이 중 500명 이상이 지난해 제주도에 들어와 난민 신청을 하면서 이들의 수용 여부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단일 민족의 전통을 유지해 왔고 난민을 받아들인 사례도 극히 적기 때문에 언어, 풍습, 종교, 피부색 등이 다른 먼 나라 이방인을 수용하기는 선뜻 내키지 않을 수 있다. 필자 역시 난민 수용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제도를 정비한 후 결정해야 한다는 원칙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난민 수용을 반대하는 이들 가운데 일부가 ‘이슬람은 테러의 종교’ ‘무슬림은 여자를 개돼지로 보는 족속’ ‘난민을 수용하면 성범죄가 증가한다’라고 주장하며 극단적인 이슬람 혐오주의를 표출하는 것은 심각하게 우려할 만하다. 이 같은 극단적 견해는 이슬람을 제대로 알기도 전에 이미 정해진 굴곡진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고 결국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모적인 갈등만 조장한다.

 ◇이슬람은 특수 종교가 아닌 보편 종교 

필자는 대학 입학 후 30년 넘게 아랍어와 이슬람 역사, 종교 등을 공부해 왔다. 요즘 그나마 사정이 조금 나아지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아랍어와 이슬람 지역을 연구하는 필자를 신기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사람들이 자주 건네는 질문 중 하나가 “어쩌다 이슬람처럼 특수한 지역과 종교를 연구하게 되었나요”다. 이 같은 질문을 한국이라는 ‘특수’한 환경을 감안한다면 전혀 이해 못할 만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글로벌 기준에서 놓고 보자면 이슬람은 결코 특수한 종교가 아니며 보편 종교라고 표현해야 옳다.

미국의 비영리 사회연구기관인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무슬림 인구는 전 세계 약 73억 인구 가운데 24%에 해당하는 18억명에 달했다. 기독교(28억명)에 이어 인구수가 2번째로 많은 종교인 것이다. 무슬림 인구와 관련하여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앞으로의 증가 추세다. 이슬람권은 세계에서 인구 증가율이 가장 빠를 뿐만 아니라 청년층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매우 높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60년 무렵 무슬림 인구는 약 30억명에 달하여 전 세계 인구의 31%를 차지할 전망이다.

2015년 기준 세계 종교 인구 중 무슬림 인구는 전 세계 약 73억 인구 가운데 24%에 해당하는 18억 명에 달한다.
2015년 기준 세계 종교 인구 중 무슬림 인구는 전 세계 약 73억 인구 가운데 24%에 해당하는 18억 명에 달한다.

더욱 놀라운 사실이 있다. 무슬림 인구가 우리가 흔히 이슬람권 지역이라고 생각하는 중동, 북아프리카,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뿐만 아니라 유럽에서조차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퓨리서치센터의 조사 자료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유럽 28개국의 무슬림 인구수는 2,577만명으로 유럽 전체 인구의 약 4.9%에 불과하지만, 2050년에는 약 3,577만명을 넘어서서 유럽 인구의 7.4%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프랑스는 2016년 기준으로 무슬림이 전체 인구의 8.8%를 차지했으며, 2050년 무렵에는 자그마치 전체 인구의 12.7%를 차지할 전망이다.

 ◇ 폭력 부르는 획일적인 정체성 규정 

서구사회의 무슬림 인구 비중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크게 높아져 왔고, 그때마다 서구의 보수 단체나 극우세력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왔다. 설상가상으로 2001년 9ㆍ11 테러,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 테러, 2015년 파리 테러 등 일련의 사건이 터지면서 조금은 동정적인 입장을 취했던 일반 시민조차 무슬림 이웃을 대하는 낯빛이 싸늘하게 바뀌었다. 예멘 난민 사태를 계기로 우리 사회도 새로운 이웃 주민이 된 무슬림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아마르티아 센 ‘정체성과 폭력’

현 시점에서 아마르티아 센의 저서 ‘정체성과 폭력(Identity and Violence)’은 우리가 지구촌 공동체에 같이 살고 있는 무슬림이란 타자를 어떻게 바라봐야 좋을지 안내해 줄 수 있는 좋은 지침서가 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서 센은 타인 또는 타문명을 함부로 규정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처음부터 끝까지 반복해서 강조한다.

센은 인도 벵골 출신으로 후생경제학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남긴 세계적인 경제학자다. 1998년 아시아인 최초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했다. ‘정체성과 폭력’에서 그는 “모든 사람은 본질적으로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의 견해에 따르면, 다양한 정체성의 범주는 때로는 모순되어 보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남자이지만 페미니스트일 수 있고, 이성애자이지만 게이와 레즈비언의 권리를 옹호할 수 있으며 힌두교도지만 내세를 믿지 않을 수 있듯이. 그렇지만 실제로 이것은 모순된 것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고정관념에 의해 획일화된 정체성 규정이 그것을 모순되게 보이도록 만들 뿐이다. 센은 정체성은 양날의 칼처럼 타인을 따뜻하게 포용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많은 사람을 단호히 배제하기도 한다는 점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하기도 한다.

센은 정체성이 어떻게 집단 간의 대량 학살로 이어지는지 자신의 어린 시절 경험을 회상하며 소개한다. 그가 열한 살이었던 1944년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앞둔 인도에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폭동이 벌어졌다. 어린 센은 평화로웠던 고향 벵골이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대학살의 장소로 바뀐 것을 목격했다. 그는 “1월에는 관대했던 사람들이 7월에는 무자비한 힌두교도와 흉포한 무슬림으로 바뀌었다”라고 언급하며, 서로 알지 못하고 위해도 가했을 리 없는 사람들끼리 왜 순식간에 죽고 죽이는 사이가 되었는지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었다고 술회한다.

센은 어떤 집단이나 개인을 한 가지 정체성의 잣대만으로 획일화시켜 규정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날카롭게 지적한다. 현실적으로 대부분의 사람은 한 가지 집단에만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과 관계를 맺고 있으며 따라서 동시에 여러 가지 정체성을 공유한다. 그를 규정할 수 있는 정체성은 종교나 인종 외에도 시민권, 주거 소재, 젠더, 계급, 정치관, 직업, 식습관, 취미, 사회참여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런데 이 가운데 어느 하나의 정체성에 과도하게 집착할 경우 쉽게 갈등이 조장되고 타자에 대한 폭력이 쉽게 저질러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무슬림의 다양한 면모를 알아가는 여정의 출발 

중동 지역을 연구하는 직업이다 보니 필자는 다양한 아랍인, 무슬림과 무수히 많은 대화를 나눴고 그들이 쓴 글도 읽었다. 무슬림은 정치와 국제문제, 가치관, 서구에 대한 태도 등에서 저마다 다른 입장을 갖고 있다. 무슬림이란 이유로 그들이 모두 동일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없다. 필자의 경험에 비춰봐도 폭력보다는 평화를, 대립보다는 공존을, 증오보다는 관용을 귀중하게 여기는 무슬림이 그렇지 않은 무슬림보다 훨씬 많다.

필자는 앞으로 독자들과 함께 ‘무슬림=테러주의자=전근대’라는 획일화된 인식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몰랐던 이슬람 문명의 다양한 면모를 파헤쳐 보는 여정을 떠나고자 한다. 여정을 거치며 622년 아라비아반도의 도시 메카에서 출발한 이슬람 문명이 지난 약 1,400년 동안 우마이야조, 압바스조, 오스만 제국 등 대제국을 이루며 동ㆍ서양의 과학 및 기술의 교류와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살필 것이다. 중세 암흑 시기에 서구에서 맥이 끊어졌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 전통이 무슬림 학자들에 의해 어떻게 부활했는지도 알아보고, 십자군 전쟁이나 오스만 제국의 유럽 침공을 ‘종교 또는 문명 간의 충돌’이라는 단순화된 도식으로 보는 것이 타당한지도 돌아볼 것이다. 서구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이슬람 세계의 이미지가 어떻게 실재와 다르게 형성되고 회자되어 왔는지도 여정의 목록에 담겼다. 이슬람의 역사 속에서 다른 가치관과의 평화적 공존을 시도한 경험은 없었는지 등도 탐색할 것이다.

김정명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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