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회담 앞 당일치기와 달리 귀환 기약 없이 방북… 정상회담 합의문 도출에 총력
6일 북미 실무협상을 위해 평양을 찾은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는 이튿날인 7일에도 평양에 머무르며 협상을 이어갔다. 지난해 1차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협상대표가 당일치기 협상을 반복했던 것과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북미 모두 정상회담 합의문 도출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양상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 등 북한의 과감한 핵 능력 감축 조치와 대북 제재 완화를 둘러싸고 치열한 줄다리기가 펼쳐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여명의 협상단과 동행한 것으로 알려진 비건 대표는 방북 이틀째인 이날도 카운터파트인 김혁철 전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와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 소식통은 “비건 대표가 애초에 귀환 날짜를 확정하지 않고 평양에 갔다”며 “최대 9일까지 체류 가능성을 열어둔 채 대화 추이에 따라 귀환 날짜를 정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르면 8일 남측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대화가 순조롭게 이어지거나 시간이 더 필요할 경우 9일까지도 체류가 연장될 수 있다는 뜻이다.
◇장막 뒤 깜깜이 협상, 청신호? 적신호?
비건 대표의 체류가 길어지는 사이 미 협상단의 동선이나 북측과의 협상 상황은 철저히 장막에 가려져 있다. 북한 매체들은 이날도 비건 대표의 방북 기사를 일절 싣지 않았다. 협상 당사자가 아닌 우리 외교부도 “현장에서 협의가 어떻게 되는지 지켜보는 게 좋겠다”며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협상과 관련해 현지에서 전해지는 소식은 방북 첫날인 6일 “비건 특별대표가 오전 10시쯤 평양에 도착했다”는 러시아 타스 통신 보도가 전부다.
미측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수일간 협상을 벌이는 것은 작년과 다른 양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지난해 3월부터 10월까지 4차례 방북했으나 대부분 24시간을 넘기지 않고 평양을 떠났다. 6ㆍ12 정상회담을 2주 앞두고 실무협상을 맡은 성김 주필리핀 대사와 최선희 외무성 부상은 판문점에서 ‘출퇴근 협상’을 벌이기도 했다. 1차 정상회담 당시 실무협상이 미진했던 것이 정상 간 담판에 걸림돌로 작용한 전례를 반면교사 삼아 미국이 이번에는 정상회담 전 만반의 준비를 하겠다는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양국이 어떤 식으로든 대화를 중단 없이 이어간다는 건 최소한 회담에 적신호는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북측의 비핵화와 미국의 상응 조치라는 큰 틀에 대해선 양측 합의가 이뤄졌고, 지금은 디테일을 놓고 밀고 당기기가 이뤄지고 있다는 의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변-제재 거래 가능할까
북측의 비핵화 조치는 일단 영변 핵 시설 폐기일 것으로 보인다. 영변은 북한 핵 물질 생산의 심장부로 플루토늄 재처리 및 우라늄 농축 시설이 집중돼 있다. 이들만 제거해도 북한 핵 능력의 상당 부분이 상실된다. 그동안 최우선 비핵화 행동으로 고집해 온 포괄적 핵 물질ㆍ시설ㆍ무기ㆍ프로그램 신고를 미측이 나중에 받을 수 있다고 양보한 것도 이런 실질적 효과 때문이다.
최대 난관은 방식이다. 지금껏 북한이 적용한 임의 폐기 방식은 더 이상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미측 입장이다.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 규모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이제부터라도 진행되는 폐기 절차에 국제사회 전문가들이 빠짐없이 개입하고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영변 핵시설은 단순 참관이 아니라 시료 채취까지 가능한 사찰이 이뤄져야 한다고 미측이 요구했을 공산이 크다.
영변 시설 폐기의 짝패가 될 만한 보상 조치를 찾아내는 일도 협상팀에게 어려운 과제였을 법하다. 협상 돌입 직전까지 북한이 각종 매체를 통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도 있다며 줄곧 요구해 온 상응 조치가 대북 제재 해제다. 그러나 제재를 건드리는 건 맨 나중이며, 영변 핵 시설들이 없어지고 난 뒤에야 완화든 해제든 제재 관련 보상이 가능하다는 게 미측의 일관된 생각이다. 미측이 대신 제시할 수 있는 카드로 종전선언이 거론되지만, 지난해 남북 정상의 ‘9월 평양공동선언’ 구조를 뜯어보면 종전선언은 영변 시설 폐기의 보상이 아니라 선행 조건에 불과하다는 게 북한의 인식이어서 여전히 간극이 크다.
이와 함께 북측이 제재 완화를 받아내기 위해 중국 반출을 전제로 미측의 관심이 큰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카드를 내놓고, 개성공단 및 금강산관광 재개 등 남북 경제협력 제재 면제라는 우회적 제재 완화 카드로 미측이 호응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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