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ㆍ에이즈)을 일으키는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에 오염된 혈액제제가 대량 유통돼 환자들에게 투여된 것으로 확인돼 비상이 걸렸다. 긴급 조사에 착수한 보건당국은 민심 동요를 우려한 듯 “감염 확률이 낮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네티즌을 중심으로 비판여론이 확산되고 있다.
중국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지난 6일 홈페이지에 긴급 발표문을 올려 상하이신싱(上海新興)의약이 만든 정맥주사용 면역글로불린이 HIV 양성 반응을 보였다는 보고가 접수돼 이미 해당 주사제를 맞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모니터링을 강화할 것을 전국 의료기관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당국은 또 상하이신싱의약에 해당 주사제 생산 중단과 함께 전량 회수토록 조치했다. 문제가 된 주사제는 장시(江西)성의 한 병원에서 HIV 양성 반응이 나온 것을 확인하고 보건당국에 보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혈액을 원료로 만드는 면역글로불린은 백혈병 환자 등 면역력이 저하된 환자들에게 투여되는 혈액제제다. 파문을 일으킨 상하이신싱의약은 2000년 설립된 국영업체로서 중국 혈액제제 시장에서 두 번째로 큰 업체다. 2015년 3월에도 품질 문제로 상하이 보건당국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적이 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상하이신싱의약에 조사팀을 급파해 생산을 중단시킨 채 현장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가위생건강위원회는 HIV에 오염된 면역글로불린의 양이 얼마인지, 문제의 제품이 얼마나 많은 환자에게 투여됐는지 등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전문가들은 이 약품을 사용한 환자들이 에이즈에 걸릴 위험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고 주장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번에 HIV에 오염된 것으로 확인된 제품과 함께 만들어진 제품은 유통기한이 2021년 6월까지인 50㎖짜리 병 1만2,229병에 달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중국 네티즌들은 중국 정부의 주장과 조치를 비판하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한 네티즌은 웨이보(微博ㆍ중국판 트위터)에서 “감염 가능성이 적다면 지도자들의 가족들이 먼저 시험 삼아 주사를 맞아보라”고 쏘아붙였고, 다른 네티즌은 “정확한 사실은 공개하지 않고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는 식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 7월 발생한 ‘가짜 광견병 백신’ 파동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당시 중국 정부는 의약품 생산ㆍ유통 과정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지만 반년만에 또 대형 사고가 터지면서 정부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셈이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이미 주요 매체의 해당 기사에서 댓글 기능을 삭제하는 등 비판여론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한 소식통은 “중국 공산당의 주요 지지기반인 중산층이 식품 안전과 공해, 보건 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당과 정부에 비판적인 경향을 보이기 시작했다”면서 “무역전쟁과 경기 침체 우려로 가뜩이나 민심이 좋지 못한 상황에서 연인원 30억명의 이동으로 전국적인 여론이 형성되는 춘제 연휴에 의약품 파동까지 불거져 시진핑(習近平) 지도부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게 됐다”고 말했다.
베이징=양정대 특파원 torc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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