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타이어의 자회사인 자동차 배터리 제조기업 ‘아트라스BX’는 현재 감사위원 2명 자리가 공석이다. 경영진이 추천한 감사위원 선임안이 작년 3월과 10월 주주총회에서 모두 부결됐기 때문이다.
부결을 이끈 건 ‘가치투자’를 표방하는 자산운용사 ‘밸류파트너스’였다. 밸류파트너스는 경영진 추천으로 선임되는 감사위원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할 거라고 주장하며 이에 동조하는 소액주주를 규합했다. 상법상 권리인 ‘주주명부 열람’을 이용해 소액주주를 파악한 뒤, 주식 수가 많은 주주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실제 많은 소액주주가 의결권을 밸류파트너스에게 위임한 결과, 작년 10월 임시 주총에선 감사위원 선임안 반대(약 49만표)가 경영진 측 찬성(20만표)을 크게 앞질렀다. 윤종엽 밸류파트너스 대표는 “일부 대주주가 기업을 개인 소유물로 인식하는 봉건시대 수준의 지배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주들의 인식이 함께 해 가능했다”고 자평했다.
최근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주주의 적극 경영 참여)’ 행사 여부가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평소 고객의 돈을 모아 주식 투자를 하는 자산운용업계에서도 예전과 다른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투자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해 점점 더 많은 펀드들이 적극적인 ‘반대 의견’을 행사하고 있는데, 이를 진정한 ‘가치투자’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시각도 많아지는 분위기다.
◇주총 안건 50% 반대한 사모펀드
밸류파트너스는 지난해 업계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한 펀드다. 밸류파트너스가 주주로 있는 기업 경영진의 주총 제안 안건에 반대한 비율은 지난해 무려 50%에 육박했다. 밸류파트너스는 특히 기존 경영진이라 볼 수 있는 ‘사내이사 선임’에만 71.43%의 반대표를 던졌다. 이외에 사외이사 선임(50%), 감사위원 선임(44.44%)에도 적극적으로 반대표를 행사했다.
윤 대표는 7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주로 경영진 관련 안건에 반대표를 던진 이유로 “가치투자는 주주 전체를 위해 기업 가치를 올리는 것”이라며 “이를 위해선 관성에 젖은 경영진과 이를 견제하지 못하는 사외이사, 감사위원부터 주주들이 견제하고 경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밸류파트너스는 주총에서의 반대 의결권 행사로 모자라면, ‘주주 제안(주총에서 다뤄지기 원하는 안건을 주주가 직접 발의하는 것)’도 동원한다. 지난달 30일 밸류파트너스는 코스피 상장사 현대홈쇼핑에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주문했다. 주주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철강회사 KISCO홀딩스, 용접재료 전문기업 조선선재 등에도 비슷한 주주 제안을 했다. 이중 조선선재는 실제 밸류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사주를 매입ㆍ소각해 주가가 오르기도 했다.
윤 대표는 “우리가 주로 투자하는 기업은 현금 창출 능력은 뛰어나지만 이를 투자하지 않고 쌓아두는 곳”이라며 “이런 기업들은 주가가 굉장히 저평가돼 있어 자사주 매입이나 재투자로 주가를 제대로 평가 받게 하는 게 우리의 주된 투자 방식”이라고 말했다.
◇“경영참여는 이제 선택 아닌 필수”
이런 적극적 경영참여는 밸류파트너스만의 전략이 아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에 따르면 이날 기준 스튜어드십코드에 참여하는 기관투자자가 80곳에 이르고, 35곳은 참여 계획서를 낸 상태다. 금융투자협회에 등록된 201개 자산운용사 및 전문사모운용사 가운데 이미 60% 가까운 기관투자자가 주주권 행사를 통해 수익을 내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특히 자산운용 규모 10조원 이상인 대형사 5곳(KB, 한국, 미래에셋, 한화, 삼성)이 스튜어드십코드 참여를 선언한 상태라 업계에서는 “경영참여를 통한 수익 창출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대형사 중 3곳은 이미 지난해 경영진 안건에 반대하는 비율이 2017년보다 상승했다. KB자산운용은 3.92%에서 8.12%로 미래에셋자산운용은 1.88%에서 8.93%로 급상승했다.
전문가들은 기관투자자들의 경영참여가 갈수록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기업지배구조 관련 업계 관계자는 “건강한 지배구조를 유도하는 방식의 가치투자는 잠깐 부는 바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투자 방식으로 각광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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