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킹덤’의 인기몰이가 초반부터 심상치 않다. 유명 해외 시리즈물로 이미 자체제작(오리지널) 역량을 인정받은 넷플릭스가 회당 20억원(총 6부작)의 제작비를 쏟아 신작을 만들고 있는데, 한국 감독과 작가, 배우들을 앞세워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좀비 사극’을 선보인다는 소식에 방송계가 들썩였다. 통신3사 중 유일하게 인터넷TV(IPTV) 메뉴에 넷플릭스를 탑재한 LG유플러스는 지난달 25일 킹덤 방영 직후 5일 동안 IPTV 하루 신규 가입자 수가 평소보다 3배 늘었다. LG유플러스 스스로 “킹덤 효과”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하지만 KT와 SK브로드밴드는 속을 끓이고 있다. 자사 인터넷 서비스 가입자가 원활하게 넷플릭스 콘텐츠를 시청하려면 충분한 망과 서버 용량이 필요한데, 이에 필요한 비용은 통신사가 전적으로 부담하고 서비스 수익은 넷플릭스가 챙기는 구조 때문이다.
더구나 ‘킹덤’ 인기로 넷플릭스 이용자가 갑자기 늘면서 콘텐츠 속도 지연, 화질 저하 등의 불만은 통신사로 쏟아지고 있다. KT와 SK브로드밴드가 울며 겨자 먹기로 망을 증설하려는 이유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말 LG유플러스와 콘텐츠 제공 제휴를 맺을 때 인터넷 망과 서버 확충 비용 분담하기로 했지만, KTㆍSK브로드밴드와는 협상조차 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국내 통신사들은 최근 망 사용료를 지불하겠다고 나선 페이스북 사례를 들며, 넷플릭스도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7일 업계에 따르면 KT는 넷플릭스 이용자 급증 여파로 2월 중 해외 망을 증설할 계획이다. 국가 간 데이터 접속을 돕는 국제해저케이블의 용량을 증설한다는 얘기다. SK브로드밴드도 지난달 25일 넷플릭스 트래픽 급증을 해결하기 위해 넷플릭스용 해외 망 용량을 2배로 늘렸다. 망 증설 규모를 감안하면 KT와 SK브로드밴드 통신망에서 넷플릭스 접속량이 최소 1.5배 증가한 것으로 추산된다.
넷플릭스 서버는 해외에 있다. 국내 이용자들이 넷플릭스에 접속하고 콘텐츠를 선택해 재생하는 행위는 국제 망을 통해 이뤄진다. 그런데 이용자가 너무 몰려 과부하가 생기자 통신사들이 넷플릭스로 연결해 주는 국제 망의 용량을 키우는 것이다. 증설 비용은 통신사가 부담해야 한다.
실제 KT와 SK브로드밴드 가입자들은 넷플릭스 화질이 뭉개지거나 영상이 끊기는 등 문제를 겪고 있다. 작년 12월 기준 KT와 SK브로드밴드 넷플릭스 접속 속도는 각각 2.86메가비피에스(Mbps), 1.65Mbps로 LG유플러스(3.7Mbps)에 크게 뒤진다. 넷플릭스 이용자(안드로이드 스마트폰 기준)가 2017년 9월 32만명, 2018년 9월 90만명, 12월 127만명 등으로 급증하면서 속도는 떨어졌다. 특히 킹덤 방영 직후부터 접속자 폭증 때문에 속도 차이가 더 큰 것으로 알려졌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사용자 편의를 위해 자체적으로 망 증설에 나서긴 했지만 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고 넷플릭스와 함께 국내에 캐시서버를 구축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내 캐시서버에 사용자가 많이 찾는 인기 콘텐츠 등을 저장해 두면 본사 서버로 직접 접속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해외 망 증설이 고속도로 차선을 2차선에서 4차선으로 넓히는 일이라면, 캐시서버 구축은 넷플릭스라는 목적지로 가는 전용도로 하나를 새로 뚫는 개념”이라며 “몰려드는 이용자를 감당하려면 캐시서버 구축이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캐시서버 구축에 소극적인 넷플릭스의 태도다. 일각에서는 넷플릭스가 지난해 11월 LG유플러스 IPTV에 콘텐츠를 탑재하는 제휴를 맺으면서 캐시서버 구축, 수익 배분 등 조건을 상당히 유리하게 체결한 뒤 태도가 돌변했다고 주장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는 가입자 확보가 급한 후발주자와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한 뒤 해당 조건을 기준으로 나머지 사업자와 계약하는 전략을 쓴다”며 “캐시서버 구축 비용도 LG유플러스가 대부분 부담하고 수익도 넷플릭스가 90%까지 가져가기로 했다는 이야기까지 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KT와 SK브로드밴드가 최근 망 사용료 협상에 성공한 페이스북 사례를 적극 이용하려 하지만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넷플릭스와의 계약과 관련해 LG유플러스 측은 “수익의 90%를 넷플릭스가 가져간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라면서도 “구체적 내용은 비밀 유지 조항 때문에 밝힐 수 없다”고 말을 아꼈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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