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6ㆍ12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일정이 전격 발표된 후 한 차례 취소 소동을 거쳐 예정대로 회담이 열리는 과정에서 자유한국당은 혼란 그 자체였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 적폐청산을 심판하는 계기로 삼으려던 6ㆍ13 지방선거가 ‘세기의 대좌’로 불린 북미회담에 묻히게 됐으니 그럴 법도 했다. 당시 한국당은 문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런 일정을 구걸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공개적으로 회담 파기를 요구하는 무례도 불사하는 등 아우성을 쳤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미국의 배신’ 운운하며 거든 일부 언론도 망신만 당했다.
□ 트럼프 대통령이 그제 국정연설에서 이달 27~28일 베트남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공식화하자 한국당이 또 시끌벅적하다. 북한 비핵화의 분수령으로 지목된 이 회담이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27일) 일정과 100% 겹치게 돼 기대했던 ‘컨벤션 효과’가 물거품이 될 처지니 말이다. 특히 황교안 대세론에 밀리는 홍준표 오세훈 등 ‘언더독’ 당권 주자들에게 북미회담에 따른 전당대회 흥행 부진은 치명타다. 여권의 잇단 악재 덕분에 30%를 눈앞에 둔 당 지지도도 다시 고꾸라질지 모른다.
□ 전당대회 연기는 하나의 탈출구가 될 수 있다. 뜬금없고 낯선 것은 당권주자들이 마구 내뱉는 아무 말이나 음모론이다. “5000만 국민 생명이 걸린 북핵 문제조차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삼으려는 저들의 책략에 분노한다”(홍준표) “(지방선거 하루 전 싱가포르 회담으로 재미를 본) 김정은ㆍ문재인 정권이 27일로 요청했을 것”(김진태)이란다. 툭하면 한미 엇박자라고 문 정부를 공격하던 사람들이 이렇게 말을 바꾸니 어이가 없다. 미국 주류사회의 우려와 견제를 비웃어온 트럼프가 들었다면 댓바람에 “그 입 다물라”고 했을 것이다.
□ 어제 오세훈의 출마선언으로 한국당 당권 주자는 황교안 홍준표 김진태 안상수 정우택 심재철 주호영 등 8명으로 확정됐다. 기탁금이 1억원이고 후보단일화 움직임도 있는 만큼 14일부터 시작되는 선거전 구도가 어떻게 될지는 미지수다. 현재로선 원외의 ‘황-홍-오’가 빅3를 형성하고 원내그룹은 처진다는 게 정설이다. 한국당의 고민은 빅3가 저마다 큰 약점이 있어 “빅스리가 아니라 삑사리”라는 비아냥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외풍에 휘둘리지 않는 결기와 비전을 보여줘야 할 때에 꽁무니 빼는 집에서 어떤 리더십이 나올까.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