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웹툰 ‘그날의 히요’ 연재 히요 작가
“싱글맘은 다 착하고 억척스럽고, 엄청난 모성애로 중무장한 강력한 여성이라는 생각도 일종의 환상이죠. 누군가 자꾸 저에게 ‘대단하다’고 할 때마다 갸우뚱해요. 전 이혼하고 나서 삶이 가장 편안하고 행복한데, 왜 자꾸 불행하리라 단정하고 그걸 헤쳐나간다고, 대단하다고 하는 거지?”
‘그날의 히요’는 작가 히요와 아들, 부모님, 고양이의 삶을 때론 유쾌하게 때론 뾰족하게 담아내는 웹툰이다. 매주 생활 미디어 사이트 '핀치(thepin.ch)'에 실리는 이 일상다반사는 일ㆍ육아 병행에 대한 소소한 고민부터 누군가는 지금 꼭 말해야 할 편견, 부조리에 대한 날 선 지적을 망라한다. 더불어 아이를 지극히 사랑하되, 자기 삶의 중심을 놓지 않는 일관된 태도로 독자의 눈길을 붙든다.
서울 중구 갤러리 ‘을지로 OF’에서 만난 히요 작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정상의 범위와 정의가 너무 좁고 천편일률적”이라며 “다른 종류의 정상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여성 아티스트 그룹 ‘불화자 콜렉티브’로 활동 중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말 이 갤러리에서 ‘Free 후리’ 전시를 진행했다.
그의 연재 계기와 목표는 명료하다. “이혼하고도 잘 먹고 잘사는 사람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보통은 선택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방식의 삶, 그렇지만 너무 행복하고 만족도가 높은 삶을 웹툰으로 전시하는 거죠. 회사를 안 다니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프리랜서로 일할 수 있고, 결혼을 절대 안 할 줄 알았는데 했다가 이혼도 할 수 있고, 혼자 애 키울 수도 있고, 그러면서도 행복하다는 걸 보여주는 무대가 우리 사회엔 거의 없잖아요.”
“지금이 인생 만족도가 가장 높다”는 그가 수년 전 이혼 뒤 마주한 건 고난과 역경이 아니라 ‘정상성에 대한 편협한 인식’이었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뭐든 ‘딱지’를 붙이고 전형적으로 해석하려는 태도가 자리한다고 봤다. 히요 작가는 “이혼한 여성의 성격이 셀 것이라는 이상한 생각, 서른 넘은 여성은 엄청나게 늙어가리라는 이상한 기대, 여자는 약하지만 엄마는 강하다는 상투적 묘사 등의 정형화된 구별이 거의 강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엄마라는 이름 안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잖아요. 강남에서 학원 돌리는 엄마, 힘들게 생활비 버는 엄마, 헌신적인 엄마, 자기 삶을 중시하는 엄마 등. 싱글맘도 마찬가지예요. 전 육아 금수저예요. 제 삶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계셨던 부모님과 함께 살고, 제가 일할 땐 육아도 해주시고, 전 저대로 프리랜서로 경제활동을 할 수도 있고요. 다른 싱글맘에 비하면 아주 운이 좋았던 편에 속하죠. 그런 맥락은 싹 무시한 채 ‘혼자 애를 키우다니 정말 대단해’라는 말을 들을 이유는 없어요.”
이런 문제의식을 담은 만큼 웹툰은 작가가 영위하는 평범한 삶과 그 안에서 펼쳐지는 여러 사회 현안에 대한 단상을 그려낸다. 아이를 아끼고 늘 함께 하는 시간이 긴 만큼, 아이에 관한 소재가 넘치지만 목표는 늘 ‘자신에게 집중하기’이다. 그는 “아이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이지만 육아를 하는 나, 순수 작업을 하는 나, 마감을 하는 나 등 다양한 모습의 내가 있는데 굳이 엄마로서의 정체성에만 초점을 맞추고 싶지도 않고 그런 작업은 이미 충분히 나와 있다”라며 “다만 아이를 키우면서 부당함을 참기가 더 힘들어진 건 사실”이라고 했다.
“부당함에 원래 예민했는데 아이를 키우면서는 제가 어떤 사태의 피해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더 공감하고 내가 만약 저 상황이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 같아요. 누가 미혼모를 차별하거나 말거나 전 타격받지 않는데 아이는 그런 성격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게 누가 혼자 낳으랬냐’라는 말에 저는 ‘뭔 ○소리야’라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은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원래는 중2병이라 ‘다 될 대로 되라지’라던 저에게도 너무 소중한 사람이 살아갈 이 세상은 정의롭고 좋은 곳이어야만 하는 측면이 있죠.”
히요 작가는 연신 “단지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전시하고 싶을 뿐”이라고 몸을 낮추면서도 이것만은 말하고 싶었다고 했다. “뭐든 내가 행복해야 아이의 행복도, 좋은 가정도 추구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이 웹툰을 통해 다른 분들도 더 눈치 안 보고 본인이 행복한 걸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세상 사람들은 다 바빠서 생각보다 남에게 관심이 없어요. 잠깐 이야기하고 말아요. 결혼 안 한 여성도 정상, 결혼 안 하고 애만 낳아서 키우는 것도 정상, 게이도 정상, 레즈비언도 정상, 트랜스젠더도 정상. 남의 행동과 정체성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말고 우리 모두 다 정상으로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글ㆍ사진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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