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연설로 더 갈라진 미국 정치… 장벽 건설ㆍ민주당 인사에 욕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현지시간) 신년 국정연설에서 ‘위대함을 선택하기’(Choosing greatness)란 주제로 초당파적 통합의 정치를 강조했지만 국경 장벽 건설과 보호무역주의 등 자신의 어젠다를 고수했다. 역대 최장인 35일간의 연방정부 셧다운(부분적 업무정지) 사태를 부를 정도로 극심한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내놓지는 못했다는 평가다. 민주당 의원들은 일부 연설 내용에선 공화당 의원들과 함께 기립해 박수를 보냈으나, 대체로 자리에 앉아 싸늘한 반응을 보였고 연설이 끝난 이후 즉각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1시간22분간 진행된 국정연설 모두(冒頭)에서 “우리는 복수와 저항과 보복의 정치를 거부해야 하고 협력과 타협과 공동선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용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함께 수십 년의 정치적 교착을 깨고 과거의 분열을 극복하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연합을 결성하고 새로운 해법을 만들고 미국의 미래에 대한 특별한 약속의 문을 열 수 있다. 그 결정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중간선거를 통해 민주당이 하원을 장악한 새로운 정치 현실을 감안해 민주당과의 협력을 강조한 것이다.
“장벽 지을 것” 강경 입장 고수…오찬 자리서 민주당 인사에 욕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초당적 협력을 주문하면서 꺼낸 첫 번째 의제는 핵심 갈등 현안인 국경 장벽 건설이었다. 그는 15분 가량을 할애해 마약 밀수, 인신 매매, 갱단에 의한 살해 등 불법 이민의 폐해를 부각시키면서 “우리는 시민의 생명과 일자리를 보호하는 이민 시스템을 만들 도덕적 의무가 있다”며 “불법 이민에 대한 관용은 연민이 아니라 잔인한 것”이라고 민주당을 겨냥했다. 또 “과거 이 방에 있던 대다수가 장벽을 위해 투표했지만, 제대로 된 벽은 건설되지 않았다. 내가 그것을 지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다만 민주당과의 협상이 결렬될 경우 거론되는 국가비상사태 선포는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와 함께 낮은 실업률과 일자리 창출 등을 거론하며 “미국에서 경제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며 자신의 경제 치적을 한껏 강조하는 동시에 “이를 방해하는 유일한 것은 어리석은 전쟁과 정치, 터무니없는 당파적 조사”라고 자신을 겨냥한 각종 수사와 민주당이 주도하는 의회 조사에 대한 불만을 분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울러 민주당이 지지하는 ‘후기 낙태’을 금지하는 법안도 요구하며 낙태 문제에 대한 정지 쟁점화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우리나라에 사회주의를 도입하라는 새로운 요구를 받고 있다”며 부유세 도입 등 급진적인 주장을 펴는 민주당 의원들을 겨냥했다. 그는 “미국이 결코 사회주의 국가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우리의 결심을 새롭게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인프라 시설 구축 등 초당적 의제를 일부 거론하긴 했으나 향후 대선 재선 가도에서 쟁점이 될 수 있는 사안을 곳곳에 배치해 민주당과의 격돌을 예고했다. 특히 이날 주요 방송 앵커들과의 오찬에서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를 “더러운 X새끼”(nasty son of a bitch)라고 불렀고,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바보(dumb)”라고 지칭했다고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이 참석자를 인용해 보도해 정치적 논란이 예상된다.
‘호혜무역법 입법화’ 촉구…시리아 철군 고수
트럼프 대통령은 외교ㆍ통상정책에서 미국 우선주의 기조를 이어갔다. 그는 “놀라운 경제적 성공을 이루기 위해선 수십년간의 재앙적인 무역정책을 뒤집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어떤 나라가 미국산 제품에 불공평한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도 그들의 제품에 똑같은 관세를 매길 수 있어야 한다”며 호혜무역법(Reciprocal Trade Act) 입법화도 주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도 비슷한 취지의 호혜세(Reciprocal tax)를 언급하며 즉각적인 보복 관세 대응을 강조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위대한 국가들은 끝없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며 시리아 철군 방침을 재확인했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의 협상을 언급하며 “우리 군의 주둔을 감축하고 반 테러리즘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당 소속 낸시 펠로시 하원 의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 연설 직후 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국경 문제와 관련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대신 강력하고 현명한 국경 안보 해법을 제시하기 위한 초당적 위원회의 법안에 서명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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