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판결에 따라 2020년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된다. 현재 국방부가 마련한 안은 육군 현역복무기간의 2배인 36개월을 교도소에서 합숙 복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안을 놓고 한편에서는 복무기간이 너무 길고, 복무분야를 교도소로 한정한 것이 일종의 ‘징벌’이라고 비판하고 있으며, 다른 한편에서는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막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하고 있다. 또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양심’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로 보는 사람들은 대체복무제도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라고 비판하고 있다. 국민들의 여론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라진 상황이라 국방부에서도 법안 마련이 무척 힘들었을 것이다.
대체복무제도의 설계에서 중요한 고려 사항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의무부담의 형평성이고, 또 하나는 병역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 두 가지 요구조건이 서로 충돌한다는 것이다. 대체복무가 군복무와 고역의 정도가 비슷하다면, 양심상의 이유가 아니라 ‘이익’을 위해 대체복무를 신청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므로 부득이 ‘양심’의 ‘진정성’을 확인하는 절차가 있어야 한다. 양심의 ‘심사’가 가능한 지도 의문이지만, 이 심사가 느슨하면 악용을 방지하기 어렵고, 엄격하면 또 다른 기본권 침해 논란을 야기할 수 있으며, 오심(誤審)의 위험성도 커진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의 기간을 현역 복무기간보다 어느 정도 길게 하거나, 대체복무의 강도를 현역복무의 경우와 같게 하거나 그보다 더 무겁고 힘들게 하면, 심사의 곤란성 문제를 상당 부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제시하면서, “다만, 대체복무의 기간이나 고역의 정도가 과도하여 도저히 이를 선택하기 어렵게 만드는 것은 징벌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체복무를 현역복무보다 “길게 하거나, 더 무겁고 힘들게” 하는 것은 분명히 형평성에 어긋나지만, 과도하지만 않다면, 악용 방지를 위해 불가피하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현역복무의 ‘고역의 정도’에 대한 판단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현역복무보다 “더 무겁고 힘들지만 과도하지 않은” 복무기간이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이 제도를 도입한 나라들을 보면, 사회복지, 보건의료, 환경안전 등 공공서비스 분야에서 길게는 현역의 약 2배(핀란드, 구 프랑스), 짧게는 현역과 동일(덴마크, 스웨덴, 구 독일)한 기간의 대체복무를 하도록 하고 있다. 처음에 2배에서 시작하여 나중에 1.5배 혹은 그 이하로 줄여간 나라들(그리스, 러시아, 구 폴란드)도 있다. 나라마다 국민들이 병역의 의무를 자발적으로 이행하려는 의사와 군복무에 대해 느끼는 부담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긴 현상일 것이다.
36개월의 교도소 복무가 18개월의 현역복무에 비해 더 힘들고 무거워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대체복무제의 도입 자체에 부정적인 여론도 있고, 기피수단으로 악용될 것을 우려하는 사람들도 많은 상황이라 형평성보다는 심사가 용이한 안을 국방부가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복무분야를 교도소로 한정한 것도 이해할만한 측면이 있다. 교도소외에 사회복지, 의료, 환경 등의 분야는 수요가 많지 않고, 여러 분야로 나뉘어 있을 경우, 대체복무자들 간에 복무조건에 크고 작은 차이가 발생할 것이다. 따라서 대체복무자들 간의 형평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분야마다 복무기간을 다르게 설정해야 하는 등 대체복무제도 자체가 매우 복잡해질 가능성이 있고, 제도 운영도 그만큼 어려워질 것이다. 그러나 제도가 안착되고 나면, 다른 분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는 있다.
군복무 환경이 좋아지고, 병역의무자들의 군복무에 대한 자긍심이 높아지면, 그리고 군복무를 마친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면, ‘악용’을 염려할 필요도 없을 것이고, 대체복무기간도 현역복무와 동일한 수준으로 줄여갈 수 있을 것이다.
진석용 대전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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