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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묵은 가습기 사태, 해결은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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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묵은 가습기 사태, 해결은 아직 멀었다

입력
2019.02.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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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요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2차 폐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안은주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사회적참사 특조위 제공
구요비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가 지난달 29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2차 폐 이식 수술을 기다리는 안은주씨를 만나 위로하고 있다. 사회적참사 특조위 제공

“명절엔 집에 가고 싶죠,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국가대표 배구선수 출신 안은주(52)씨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동 세브란스병원에 누워 인공호흡기를 단 채 설 연휴를 보내고 있다. 안씨는 2008년부터 3년간 가습기 살균제인 ‘옥시 싹싹 가습기 당번’을 사용한 뒤, 희귀난치성질환 ‘특발성 폐섬유화증’ 진단을 받았다. 3년 전 폐 이식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폐 기증자가 나타나는 대로 재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안씨가 병원비로 진 빚만 4억여원이다. 그러나 안씨는 폐 손상 3단계 판정을 받아 국가나 옥시 측 어디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안씨가 받은 3단계 판정은 가습기 살균제에 노출된 사실은 인정되지만, 폐가 상한 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판단이다. 국가대표 선수 출신 폐가 상했는데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안씨는 “20여년 운동만 해 누구보다 폐가 좋았는데 말이 되냐”고 말했다.

안씨의 사례에서 보듯, 가습기 살균제 참사가 발생한 지 8년이 지났지만, 사태 해결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은 2011년 임산부들이 원인불명의 폐 손상으로 사망하면서 처음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피해자는 6,246명, 이 중 사망자는 1,375명에 달한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8월 가습기 살균제를 폐 손상의 위험 요인으로 지목한 뒤 판매중지 등 조치에 나섰지만, 피해자 수천여명이 엄격한 판정기준 때문에 배상을 받지 못한 상태다. 2016년 안씨를 비롯한 피해자 400여명이 국가와 살균제 제조사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등 잇따라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환경부의 판정기준 미확립 등 이유로 재판은 지연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제조사들에 대한 책임 규명 또한 갈 길이 멀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내린 과징금이 ‘늑장 처분’을 이유로 취소되는 등 ‘시효’라는 법적 한계가 피해자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2012년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와 염화에톡시에틸구아디닌(PGH) 성분을 사용해 살균제 제품을 제조ㆍ판매한 옥시ㆍ홈플러스ㆍ세퓨 등에 대한 제재 처분을 내렸지만,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 메틸이소티아졸리논(MIT)을 사용한 SK케미칼ㆍ애경ㆍ이마트 등에 대해서는 판단을 미루다 2016년 8월 공소시효 만료 직전 사실상 무혐의 처분인 심의절차종료 결정을 내렸다.

비판이 거세지자 지난해 3월 뒤늦게 과징금을 부과하면서 “여전히 공소시효가 남아 있다”고 주장했지만, 최근 “시효가 지나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연달아 나오면서 “공정위가 피해자들을 ‘희망 고문’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제 피해자들이 마지막으로 기대 볼 수 있는 곳은 검찰 수사다. 서울중앙지검 형사2부는 최근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SK케미칼ㆍ애경ㆍ이마트 등 각 기업 본사와 공장 사무실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2011년을 기준으로 하면 7년의 공소시효가 만료됐지만, 피해자들은 2015년에도 사망자가 발생했기에 공소시효가 2022년까지 남아있다고 주장한다. 검찰 역시 공소시효가 일부 남았다고 보고 수사에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설 연휴에도 병원 신세를 져야만 하는 안은주씨는 “기업들은 책임지지 않고, 국가는 손 놓고 지켜보기만 한다”고 분노했다. 그는 “두 차례 폐 이식을 받은 뒤 살아남은 사례가 없다고 들었지만, 나는 꼭 다시 일어나 책임 규명에 나서겠다”며 마음을 다졌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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