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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북미 비핵화 중재자’ 경쟁 전세 기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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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북미 비핵화 중재자’ 경쟁 전세 기우나

입력
2019.02.04 11:00
수정
2019.02.04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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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北美 교착 속 서울 답방보다 방중 먼저 선택

“보상 인색, 비핵화만 집중한 남북미 구도 불만 반영”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7일부터 나흘간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같은 달 10일 보도했다. 1월 8일 인민대회당에서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인민해방군 사열을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지난달 7일부터 나흘간 방중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을 같은 달 10일 보도했다. 1월 8일 인민대회당에서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국 인민해방군 사열을 하고 있다. 평양=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지난해 북미 간 중재자는 단연 한국이었다. 협상에 나선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의존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문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줬다. 양측의 신뢰를 밑천으로 문 대통령은 민족과 동맹 간에 다리를 놨고 한반도 운전자를 자임했다.

그러나 올 첫 외교 행보로 김 위원장은 방중을 선택했다. 신년 벽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고 베이징(北京)에서 생일상을 받았다. 지난해 6월 첫 북미 정상회담 뒤 들러붙은 대미 비핵화ㆍ평화 교환 협상을 떼어내기 위한 두 번째 담판 자리를 마련해 보려던 참이었다.

중국은 유일하게 패권을 놓고 미국과 겨룰 수 있는 강대국이다. 북한이 갈구하는 안보와 경제 발전은 새로운 북미 관계뿐 아니라 새로운 북중 관계를 통해서도 추구와 성취가 가능하다. 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거론한 ‘새로운 길’이 혈맹 복원일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주구장창 비핵화 선행만 요구하면서 보상에는 인색한 미국에게 경각심을 주려면 아무래도 힘센 나라한테 중재를 부탁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판단을 북한이 했을 법하다.

◇종전선언도 못 끌어낸 南

작년 말까지 청와대는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 가능성에 미련을 뒀다. 중재자로서의 강박 때문이었다. 여건만 놓고 보면 사실 무리할 이유가 없었다. 남북 간에 의미 있는 교환이 이뤄지려면 대북 제재 완화가 필수다. 네 번쯤 만났으면 개성공단 재가동이나 금강산관광 재개 같은 선물을 받아내야 김 위원장도 평양에 돌아가 체면이 설 텐데 문 대통령은 그럴 형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비핵화 행동을 서두르라고 김 위원장을 재촉해야 할 판이었다.

북미 협상 교착 국면이 길어지자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문 대통령에게 중재자 역할을 맡기려 한 듯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기간인 작년 11월 말 한미 정상회담 때 김 위원장이 자신을 만나기 전 서울에 오면 자기 메시지를 좀 전해줄 것을 주문했다고 한다. 하지만 보상 측면에서 딱히 전향적이거나 새로운 내용이랄 게 그 메시지에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끝내 김 위원장은 오지 않았다.

그런 그가 새해가 밝자마자 찾아간 곳이 베이징이었다. ‘정전체체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기 위한 다자 협상을 추진한다’는 구상이 신년사에서 드러난 걸 보면 이미 북중 간 사전 교감이 있었으리라는 게 전문가들 분석이다. 이상숙 국립외교원 연구교수는 지난달 7~10일 김 위원장 방중 직후 펴낸 보고서에서 “이번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의 평화체제 협상 참여를 재확인한 건 남측이 중재자인 남ㆍ북ㆍ미 3자 구도가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다고 북한이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1월 10일자 지면에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달 8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건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방중 소식을 1월 10일자 지면에 사진과 함께 보도했다. 김 위원장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지난달 8일 중국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환영 만찬에서 건배하는 모습. 연합뉴스

일이 이렇게 되자 한국이 중재자가 되기에는 애초 한계가 있었다는 자각도 외교가 일각에서 나온다. 한 국책연구기관 전문가는 4일 “당초 남측이 당위성을 제기하고 추진을 주도한 (6ㆍ25전쟁) 종전선언이, 의미 축소라는 고육책까지 써가며 어떻게든 연내에 성사시키려는 한국의 안간힘에도 미국의 벽에 막혀 끝내 좌절되는 현실을 지켜보면서 북한이 대안 필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ㆍ중국 모두 북한의 경협 파트너지만 제재로부터의 자유도나 모델 적용 용이성 면에서 중국 쪽이 우위일 여지가 크다. 이재영 통일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근 공개한 보고서에서 “김정은이 이번 방중을 통해 신년사에서 언급한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면 이는 중국과의 경협과 중국 개혁 개방 모델 일부 수용을 통해 국제사회의 제재를 우회하면서 추구하는 경제 발전일 수 있다”며 “앞으로 북한은 자립 경제 건설을 위해 과학교육사업과 과학기술 분야의 첨단산업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중국식 모델을 배우고 중국과 협력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남ㆍ북ㆍ중 협력이라는 우회로를 찾을(이희옥 성균관대 교수) 가능성도 없지 않다.

◇회유보다 압박… 美의 계산

북한뿐 아니다. 미국도 대북 비핵화 지렛대로 중국을 활용하는 데 관심을 보이는 기색이다. 소통과 회유에 특화한 한국에 비해 영향력으로 자국과 함께 압박을 가해줄 수 있는 중국의 효용이 더 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실제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은 부에노스 아이레스 G20 정상회담을 마치고 귀국하는 길에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기자들에게 “북한과 관련해 시 주석과 나와 100% 협력하기로 했다. 이는 대단한 일”이라고 했다.

중국의 임무는 숨통을 조였다 풀었다 하며 북한을 통제하는 일일 공산이 크다. 외교가에서는 불법 환적을 통한 정제유(油)의 북한 유입과 중동ㆍ아프리카 국가들이 상대인 북한의 무기 수출 문제를 유엔 대북제재위원회로 가져가 김 위원장 핵심 자금줄을 끊는 데 중국이 협조하도록 하고, 나아가 국경에서 중국이 북한의 무기 밀무역과 대북 원유 공급을 차단토록 하는 게 미국의 목표일 거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중국을 움직일 레버리지는 무역 전쟁이다. 미국은 2,000억달러(223조8,000억원)어치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고율(25%) 관세를 단지 90일 유예하기만 하고도(지난해 12월) 중국의 미국산 대두 즉시 수입 증대 등 커다란 양보 조치들을 이끌어냈다. 자국 이익 침해를 감내해가면서까지 북한 편을 들지는 않으리라는 게 미측의 기대다.

북한의 핵무기 생산을 동결하고 핵이 한반도 밖으로 나가지 않게 관리하는 한편 운반 수단인 미사일을 폐기하는 데 중국이 공조하고 그 조건으로 미국이 중국의 대북 주도권을 인정하는 선에서 두 강대국 간 담합이 이뤄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하지만 중국이 동북아 핵 독점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확률이 높고, 양국이 공조보다는 헤게모니 각축을 벌일 개연성이 크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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