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곽 드러난 2차 북미 핵담판 의제는
北, 제재 완화ㆍ대미 수교 염두… 美, 종전선언ㆍ경제적 카드 준비
이르면 내주 시기와 장소가 공개될 제2차 북미 정상 간 ‘핵 담판’의 의제가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당국과 언론에 의해 틈틈이 소개된 양측 입장이 지난달 31일(현지시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의 스탠퍼드대 강연 계기 언급으로 한층 뚜렷해졌다. 북한이 해야 할 비핵화 조치의 경우 영변 핵 시설 폐기가 우선이라고 양측이 공감한 듯하지만 그 반대급부로 미국이 제공할 보상에 대해서는 여전히 이견 폭이 큰 것으로 짐작된다.
일단 비핵화 트랙에서 가장 주요하게 다뤄질 행동은 북한이 거듭 약속한 ‘영변 핵 시설 폐기’가 유력하다. 지난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4차 방북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플루토늄 재처리, 우라늄 농축 시설 해체를 약속했다는 비건 대표의 환기 발언이 이를 강하게 시사한다. 두 종류의 핵 물질 생산 시설이 집중된 곳이 영변 핵 단지다. “영변에 집중하고 다른 것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같은 날 외교부 당국자의 얘기도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
특히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식화한 뒤 신속히 폐기하는 데 미국이 협상력을 집중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1일 “과거 북핵 6자회담 때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진전을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분명한 성과로 만들겠다는 게 미국의 각오일 것”이라고 했다. 실제 우라늄 농축은 플루토늄 재처리를 능가하는 북한 핵 물질 생산의 주력이 됐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문제는 미국의 상응 조치다. 지난해 남북 정상의 ‘9월 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북한이 영변 핵 폐기 가능성을 암시하면서 조건으로 미국의 상응 조치를 요구한 것은, 본격 비핵화ㆍ보상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신뢰 구축을 위해 자기들이 취한 선제 행동들에 미측의 행동이 턱없이 못 미친다는 판단에서다. 핵ㆍ미사일 실험 중단과 풍계리 핵 실험장의 폐쇄, 동창리 미사일 시험대 폐기 착수 등 자기들의 선행 비핵화 조치에 상응하는, 유예된 보상에 더해 영변 핵 폐기 보상은 추가로 챙겨야 한다는 게 북한의 인식이다.
그러나 미국은 그럴 생각이 없다. 전면 핵 시설ㆍ물질ㆍ무기ㆍ프로그램 신고를 미뤄주는 것으로 자기들이 양보했다고 여기는 미국은 영변 핵 폐기 정도 되는 중대한 핵 능력 감축 조치가 선행돼야 북한이 바라는 보상의 제공을 고려해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보상 트랙에서 북미 간 의견차는 꽤 크다는 게 협상 사정을 잘 아는 소식통들 전언이다. 북한 요구의 최대치는 대북 제재 해제와 대미 수교, 평화협정 체결이다. 협상의 출구인 셈이다. 이번 회담을 통해 적어도 제재 완화와 중국이 포함된 평화체제 구축 논의 착수 정도는 받아내겠다는 게 북한의 심산일 수 있다. 반면 미국이 가장 경계하는 게 국제사회 제재망 이완이다. 비건 대표도 비핵화 완료 전까지 제재 완화는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재차 확인했다. 지금껏 미측이 내놓은 인센티브가 종전선언과 경제적 보상, 연락사무소 개설 등 북한으로서는 변죽으로 느낄 법한 것들뿐인 이유다.
주한미군 축소ㆍ철수는 보상에 포함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국의 종용에도 북한이 미군 주둔을 양해한다는 입장이고 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과도 무관하다는 게 한미 당국자들의 확언이다. 생산 중단(동결) 정도면 몰라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 논의 가능성 역시 크지 않다는 게 외교가 중론이다.
우리 정부의 한반도 비핵화 및 평화 구축 원칙인 ‘포괄적 합의, 단계적 이행’에는 북미도 동의하는 분위기다. 구체적인 행동 계획 도출은 2차 정상회담에서 북미가 공통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이고, 협상 결과의 최대치는 비핵화와 보상 행동의 ‘시퀀싱’(sequencingㆍ순서 정하기) 및 ‘매칭’(matchingㆍ짝 맞추기) 계획이 포괄된 로드맵에 양측이 합의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전면적 핵 신고 없이 이는 불가능하다. 때문에 영변 핵 폐기라는 초기 비핵화 행동과 그 보상으로 주요 남북 협력 사업 허용이나 중국 밀무역 묵인 등 부분ㆍ우회 제재 완화를 주고받는 거래라도 성사시켜 향후 협상 동력 소진을 막고 신뢰 축적의 단초를 마련하는 게 이번 회담 성과에 대한 현실적 기대치라는 조언이 적지 않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