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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주주권 행사 첫발 뗐지만… 한발 물러선 국민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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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극적 주주권 행사 첫발 뗐지만… 한발 물러선 국민연금

입력
2019.02.01 17:14
수정
2019.02.01 22:38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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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능후(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능후(오른쪽) 보건복지부 장관이 1일 오전 서울 중구 플라자 호텔에서 열린 2019년도 제2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이 대한항공의 지주회사인 한진칼에 대해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1일 결정했다. 그러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이사직 해임 제안 등 사회ㆍ경제적 파장이 큰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미뤘다. 대신 최소한의 경영참여로 한진칼의 정관을 변경해 조 회장 등이 회사에 손실을 입혀 법정형이 확정되면 이사직을 ‘자동 박탈’하도록 추진한다. 주주총회장의 ‘덩치 큰 거수기’에 머물던 국민연금이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에 나서는 첫 사례지만, 이를 무리하게 밀어 붙이다가 당초 검토했던 수준보다 대폭 후퇴한 게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 한진칼 문제 이사에 대해 자동 해임 추진

국민연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이하 기금위)는 이날 오전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회의를 열고, 4시간이 넘는 마라톤 토론 끝에 한진칼에 정관변경을 제안하는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하기로 의결했다. 국민연금은 3월 열리는 한진칼의 주주총회에서 이사가 회사 또는 자회사와 관련해 배임, 횡령죄로 금고 이상 형의 선고가 확정되면 이사직을 자동 해임하고 3년간 이사직을 맡을 수 없도록 정관을 변경하는 안건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는 탈ㆍ위법 행위를 하거나 기업가치를 크게 훼손한 이사를 해임ㆍ선임하거나 사외이사(감사)를 추천해 경영진을 견제하는 것과 같은 직접적인 경영참여보다는 소극적인 행위다.

만약 3월 주총에서 해당 안건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 정관이 변경되면, 조양호 회장(한진칼 대표이사)이 항공기 장비와 기내면세품 등을 구입하면서 약270억원을 횡령ㆍ배임한 혐의 등이 최종 유죄로 확정될 경우 이사직에서 자동 면직될 수도 있다. 기금위의 한 위원은 “그동안 각종 일탈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었던 한진그룹 총수 일가를 직접 견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관을 변경하는 것 만으로도 지배주주의 전횡으로 ‘오너리스크’가 있는 기업에 경고를 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경영참여를 하지 않기로 결론 냈다. 기금위는 그 동안 국민연금 기금의 장기 수익성 제고를 최우선 가치로 보고 주주가치 훼손을 판단해 공정한 주주권을 행사하겠다고 강조해왔다. 국민연금은 현재 대한항공 지분의 11.68%(2대 주주), 한진칼 7.34%를 보유(3대 주주)하고 있다. 대한항공에 대해 경영참여를 하려면 자본시장법의 규정인 ‘10%룰’에 따라 6개월 이내 단기매매차익을 반환해야 한다. 기금위는 금융위원회에 10%룰을 예외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국민연금이 최소 수십억원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데, 이를 감당할 만큼 주주가치 훼손 정도가 크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금위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기관투자자의 의결권 행사지침)를 운영하는 가장 근본적인 목적은 국민연금 기금의 수익성”이라며 “앞으로 (대한항공의) 사안이 더 악화된다면 단기매매차익을 반환하면서도 적극적 참여를 할 수 있겠지만 그런 단계까지는 아니라고 봤다”고 설명했다.

◇ 스튜어드십 코드 칼 후퇴, 왜?

국민연금이 수십 가지 시나리오 중 가장 소극적 조치에 해당하는 한진칼에 대한 정관 변경만 선택한 것은 기금위 내에서도 찬반 의견이 팽팽했기 때문이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장을 제외한 기금위 위원 19명 중 11명이 참석했는데 경영참여 반대(5명)와 찬성(6명) 위원 간 난상토론이 이어졌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적극적 행사를 지지하는 위원들은 “경영진 일가의 일탈 행위로 주주가치가 훼손된 것이 분명하고, 단기매매차익의 경우 6개월간 사고 팔지 않으면 반환 의무가 없는 만큼 적극적인 경영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연금의 기업 경영 참여는 신중해야 한다는 위원들은 “국민연금 기금 수익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경영참여를 행사해 단기매매차익까지 반환하는 손실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며 “대기업 최대 주주의 갑질 등 오너리스크가 있는 기업마다 국민연금이 경영참여를 할 순 없다”고 반박했다.

논쟁이 계속되자 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나서서 ‘최소한의 경영참여’를 제안하며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기금위는 사회적대화기구로서 합의정신을 존중하기 위해 표결보다는 토론으로 합의된 의견을 모으는 게 관례다. 다만 향후 기금위 산하 전문가 모임인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에서 대한항공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하도록 하고, 경영참여에 해당하지 않는 이사연임 반대 등의 주주권 행사할지에 대해선 기금위가 보고를 받기로 했다.

◇ 제한적 경영참여 결정… 찬반 진영 엇갈린 해석

국민연금의 이번 결정은 국민을 대신해 주주권리를 찾는 사회적 합의(기금위)를 거쳐 스튜어드십코드를 이행한 첫 사례다. 이번 안건을 기금위에 제안한 이찬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기대보다는 미흡했다”면서도 “구성원들이 권한과 책임을 체감하고 앞으로 개선을 모색하기로 한 것 역시 중요한 성과”라고 평했다. 반면 반대 측 위원들은 “경영진의 능력과 일탈행위는 별개로 봐야 하는데 법정 형도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경영참여를 밀어붙이는 결정은 과도하다는 데 기금위도 동의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국민연금의 첫번째 경영참여 주주권 행사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이번 결정은 여러 숙제도 남겼다. 당초 국민연금은 경영참여 주주권은 스튜어드십 코드 가이드라인 정비를 마치는 2020년 이후 활성화할 계획이었다. 기금위 의결로 제한적 경영참여의 길을 열긴 했지만 ‘10%룰’적용 여부와 시점을 두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엇갈리며 논란이 벌어졌다. 금융위 유권해석에 따라 일단 기금위가 대한항공에 대해서는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않기로 결정하면서 문제가 봉합됐지만 △경영참여로 인정할 시점과 △국민연금이 반환해야 할 단기매매차익이 얼마인지 등을 두고 전문가들조차 이견을 보이고 있다.

국가가 연금을 통해 기업경영에 개입하는 ‘연금사회주의’라는 꼬리표 역시 떼어내지 못했다. 기금위가 전문가 자문 그룹인 수탁자책임위에 안건 검토를 맡겼어도 최종 결정은 기금위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기금위는 복지부장관이 위원장을 맡고있으며 위원 20명 중 6명이 정부 측 인사라 관치 논란이 끊이질 않고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관변경도 경영개입”이라면서 “집사(스튜어드)라고 비유하지만 복지부장관이나 기금운용본부장은 선출직이 아니라 정부의 임명직이 아니냐”고 비판했다. 위원회 구성상 독립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비판이다.

전문가들은 기금위의 개입은 이례적인 경우여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낮은 단계의 일상적 주주활동은 수탁자책임위와 기금운용본부가 맡도록 한 스튜어드십코드 취지를 지켜야 한다는 이야기다. 김용하 순천향대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주주활동은 특정 기업을 찍어내는 식이 아니라 실제로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지를 따지도록 원칙을 정하고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종현 국민연금연구원 부원장은 “사안이 나왔을 때마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연금이 원칙을 갖고 행동한다는 점을 시장이 인식해야 주주활동이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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