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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우리가 싸울 테니 나비가 되어 날아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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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복동 할머니, 우리가 싸울 테니 나비가 되어 날아가소서”

입력
2019.02.01 16:05
수정
2019.02.01 19:2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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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감온도 영하 10도 한파 속 시민들 서울광장서 노제 열고 추모 행진

“일본 정부는 안심할지 모르지만 수백만 나비 외침 속 부활하실 것”

고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 일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일본대사관 앞은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한 1,372회의 수요집회가 열린 곳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고 김복동 할머니의 운구 행렬이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 일본대사관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일본대사관 앞은 공식 사과와 법적 배상을 요구한 1,372회의 수요집회가 열린 곳이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위로금을 받으려고 싸웠습니까? 1,000억원을 준대도 안됩니다. 뉘우치고 사죄하십시오.”

서릿발 같은 고인의 육성이 차갑게 얼어붙은 서울광장에 울려 퍼졌다. “아직 우리에게 해방은 오지 않았다”고, “억울하고 원통해 죽을 수도 없다”고 외쳤던 고(故) 김복동 할머니의 생전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울리자 천 개의 ‘종이 나비’들은 노란색 물결이 돼 출렁였다.

◇노란 나비가 함께한 작별의 길

지난달 28일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상징이자 여성인권운동가인 김 할머니의 노제가 1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거행됐다. 시민들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을 상징하는 노란 종이 나비를 양손에 들고 김 할머니가 떠나는 마지막 길을 따라 나섰다.

두 팔을 힘차게 벌린 채 나비 떼에 둘러싸여 환한 미소를 짓고 있는 김 할머니의 초상화가 행렬을 인도했다.

생전 고인은 쉬이 웃지 않았다. “언젠가 일본 정부가 사과하는 날이 오면, 그때 마음껏 웃겠다”며 미소를 아꼈다고 한다. 끝내 그 날을 맞지 못한 채 하늘로 떠난 김 할머니는 그림 속에서나마 회한을 내려놓고 활짝 웃었다.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기 전까지 웃지 않겠다고 한 김복동 할머니는 추모행렬을 선도한 초상화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를 받기 전까지 웃지 않겠다고 한 김복동 할머니는 추모행렬을 선도한 초상화 속에서 활짝 웃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 나이로 94세인 김 할머니를 기리기 위해 94개의 만장(挽章)이 준비됐다. 김 할머니의 어록에서 따온 ‘일본은 조선학교 처벌 마라’ ‘하나된 나라에서 살고 싶다’는 문구가 만장에 적혔다.

행렬을 따른 시민들은 노란색 나비 모양 종이가 달린 막대를 들었다. 체감 온도가 영하 10도까지 떨어진 한파 속에서도 추모 행렬의 길이는 800m에 달했다.

김 할머니의 ‘작별 인사’는 이날 오전 6시 서울 세브란스병원 발인식부터 시작됐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윤미향 대표는 ‘훨훨 날아 평화로운 세상에서 길이길이 행복을 누리소서’란 글귀를 관 위에 적었다. 긴 싸움의 오랜 동지인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는 닫힌 운구차의 유리창에 손을 대고 흔들며 눈물을 흘렸다.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영정을 마주한 길원옥(91) 할머니는 “먼저 좋은데 가서 편안히 계세요. 나도 이따가 갈게요”라고 말했다. 길 할머니는 옅은 미소를 머금었지만 눈가에는 슬픔이 묻어났다. 오랜 벗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길 할머니는 영정이 떠나고 텅 빈 평화의 우리집 마당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고 김복동 할머니의 발인식이 엄수된 1일 오전 김 할머니가 생전에 머물렀던 서울 마포구 연남동 '평화의 우리집'에서 길원옥 할머니가 작별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을 꾸짖은 김 할머니의 ‘마지막 집회’

서울광장에서 출발한 김 할머니의 추모행렬은 생전에 수도 없이 찾았던 종로구 중학동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까지 나아갔다. 시민들은 “일본은 공식 사과하라” “법적 배상을 이행하라!”는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이용수 할머니도 평화 나비 네트워크 활동가들의 손을 꼭 잡은 채 분노의 함성에 자신의 목소리를 보탰다.

영결식은 오전 10시 20분쯤 중학동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여성인권운동가 김복동 시민장 장례위원회’ 주관으로 엄수됐다.

전세계를 누비며 전시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해 힘쓴 김 할머니의 생전 영상을 보며 시민들은 하나 둘 눈물을 훔쳤고, 이용수 할머니는 소녀상의 차가운 손을 꼭 감싸 쥐었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김복동 할머니 영결식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평화의 소녀상을 쓰다듬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소재로 연극을 제작해온 이해성 극단 고래 대표는 김 할머니를 추모했다. 이 대표는 “늘 분노와 증오에 휩싸여 있던 내 마음을 고인이 열어줬다”며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여성인권운동가로서 늘 약자를 위해 살아온 당신의 삶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아줬다”고 말했다. 목이 메어 어렵게 발언을 이어가던 이 대표는 “할머니…할머니…우리 할머니, 사랑하고 존경합니다”라고 되뇌며 힘겹게 추모사를 마쳤다.

상주로서 마지막 발언에 나선 정의연 윤 대표는 “지금 여기, 우리는 이미 김복동이 됐다”며 일본대사관을 향해 엄중히 경고했다. 윤 대표는 “언젠가 위안부 할머니들의 숫자가 0이 될 때, 일본정부는 안심할 지 모르겠지만 수백만의 나비들이 전쟁범죄자인 당신들을 향해 외칠 것이며, 그 목소리를 통해 할머니는 마침내 부활할 것”이라고 소리 높여 외쳤다.

그는 “할머니는 죽음조차 이겨내고 전국 곳곳에 평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상처 입은 자를, 힘없는 자를 끌어안는다는 게 무엇인지 당신으로부터 배웠다”며 고인에게 감사함을 표했다.

시민들의 헌화를 마지막으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 오전 11시 30분 운구행렬은 김 할머니가 영면에 들어갈 충남 천안시 망향의동산으로 떠났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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