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모(34)씨는 지난해 초 2,000만원의 종잣돈을 가지고 브라질과 중국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에 각각 1,000만원씩 투자했습니다. 1년이 지나 펀드 결산시점이 됐을 때 두 펀드의 성과가 엇갈리고 말았죠. 브라질 펀드는 1년간 9%(90만원) 수익을 거뒀지만 중국 펀드에서는 32%(320만원) 손실을 기록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230만원 손해를 봤지만 이씨는 세금 13만8,600원을 내야 했습니다. 세금을 펀드별로 매기기 때문에 브라질 펀드 수익금(90만원)에 배당소득세율(15.4%)를 곱한 만큼의 세금이 결정된 것이죠.
이씨가 보유한 중국 펀드가 올해는 10% 이익을 거둔다면 어떨까요. 지난해 하락분을 만회하기엔 모자란 수익이라 여전히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씨는 올해 발생 수익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합니다. 현행 세제상 펀드는 매년 결산을 한 뒤 세금을 매기기 때문입니다. 이씨가 원금을 까먹은 채로 펀드를 환매하게 되더라도 한 번 걷은 세금은 돌려주지 않습니다. 마이너스 수익률에 세금까지 더해 이중으로 손실을 보는 셈이죠.
◇손실 봤는데도 세금 떼가는 펀드
펀드 투자자 사이에선 현행 과세 체계가 불합리하다며 개편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핵심 요구는 두 가지, 손익 통산(상품별 손실과 이익을 합산해 세금을 계산하는 것)과 손실 이월공제(올해 손실을 다음해로 이월하는 것)입니다. 손익 통산이 제도화되면 지난해 이씨는 연간 230만원 손실을 본 것으로 인정 받아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됩니다. 손실 이월공제까지 적용된다면 이씨는 올해 중국 펀드에서 이익을 냈더라도 지난해 손실과 합산해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부담을 덜 수 있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 투자 선진국들은 손실 이월공제가 무기한 적용됩니다. 일단 손실을 봤다면 그걸 만회할 때까지는 세금을 물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세금 때문에 투자자들이 다양한 펀드를 활용한 분산투자에 나설 유인이 떨어진다”며 “손익 통산과 손실 이월공제를 허용한다면 펀드투자를 촉진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정치권도 과세체계 개편 움직임
금융투자업계도 펀드 시장 부진의 주요인 중 하나로 세금 문제를 꼽습니다. 지난달 업계 대표들과 더불어민주당 자본시장활성화특별위원회 위원들이 만난 자리에선 권용원 금융투자협회장이 “해외 선진시장은 조세 제도가 간단하고 각 상품별로 손익 통산이 가능해 투자자들이 세금 문제로 신경 쓸 필요가 없다”며 “우리나라는 국민들이 자산 증대를 위해 자본시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세금이 막아서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고 지적했습니다. 금융투자협회는 펀드뿐 아니라 주식, 채권, 파생상품 등 모든 금융상품을 아우르는 통합 세제를 정치권에 제안할 계획입니다.
정치권도 금융상품 과세 체계 개편 요구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민주당 자본시장특위는 증권거래세와 함께 펀드 과세체계를 보완하는 법안을 논의할 예정입니다. 최운열 특위 위원장은 지난해 말 주식, 파생상품 등 양도소득세를 내는 금융상품에 대해서는 손익을 통산하고 3년간 손실을 이월공제 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긴 소득세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습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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