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ㆍ대상 등에 통치철학 담아… 정치적 메시지 관심
정성 담은 선물이 정치적 수세 몰리는 화근 되기도
MB, 생물인 황태 선물하려다 불가에 결례 지적에 교체
박근혜, ‘비선 주치의’의 화장품 설 선물 포함 논란
대통령의 명절 선물은 언제나 관심의 대상이다. 어떤 물품으로 구성했는지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대통령의 통치철학이 녹아 있는 만큼 선물에 담긴 정치적 메시지가 자연스레 화두가 되기도 한다. 때론 선물 탓에 정치적 수세에 몰리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문 대통령, ‘평창 성공 기원’ ‘과학자 격려’ ‘지진 피해 위로’ 메시지
문재인 대통령은 2019년 설 선물로 ‘경남 함양의 솔송주, 강원 강릉의 고시볼, 전남 담양의 약과와 다식, 충북 보은의 유과’ 등 지역 전통식품 5종을 골랐다. 연하장에서 “그 어느 때보다 설렘이 큰 새해입니다. 3ㆍ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년이 되었습니다.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함께 잘 사는 사회 새로운 100년의 시작으로 만들겠습니다”라고 적어 국가를 위해 헌신하는 분들, 국가유공자, 사회적 배려계층 등 1만 여명에게 보냈다.
문 대통령 취임 이후 명절 선물에는 늘 전국의 농ㆍ수산물이 고르게 포함됐다. 대선 후보 시절부터 지역 균형발전 등을 강조한 국정철학이 반영됐다는 후문이다. 국가적 행사나 재난이 있을 때는 이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다.
차례상에 오르는 술도 단골 메뉴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설을 맞아 처음으로 술을 선물 목록에 포함했다. ‘팡창 감자술’이었다. 당시 설 연휴는 평창 동계올림픽과 시기가 겹쳤고, 성공적인 올림픽 개최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평창 특산품을 골랐다고 한다. 평창 올림픽을 몇 달 앞둔 2017년 추석 선물에 ‘평창 잣’이 포함된 것도 같은 취지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선물을 누가 받을지도 항상 대중의 관심사였다. 문 대통령은 대체로 군ㆍ경 대원, 국가 유공자, 사회적 약자들에게 명절마다 선물을 보냈다. 포항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은 이재민들(2018년 설)이나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 개발에 참여한 연구원들(2019년 설)처럼 정부 차원의 위로나 격려가 필요한 국민을 대상자로 꼽기도 했다.
노무현 ‘지역 안배’ MB ‘실용주의’ 박근혜 ‘맞춤 형’
명절 선물에 각 지역의 특산물을 ‘통합’했던 건 문 대통령 시절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 MB정부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 시작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참여정부 시절부터다.
. 노 전 대통령은 복분자주, 소곡주, 문배주, 이강주 등 해마다 전국 각지의 민속주를 골랐던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2003년 추석 청와대는 호남의 복분자주와 영남의 한과를 묶어 ‘지역 통합’ 선물을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2004년엔 남북 화해협력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북한 금강산 원산 호두를 고르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과 달리 이명박 전 대통령은 명절 선물에 술을 배제했다. 이를 두고 이 대통령의 종교적 가치 때문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대통령 측근들은 오히려 “실용적인 명절 선물”이라고 평가했다. 이 전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추석에는 강원 인제 황태, 충남 논산의 연산 대추, 전북 부안 재래김, 경남 통영 멸치 등 특산물 4종 세트를 선물로 보냈다. 이듬해 설에는 대구 달성의 4색 가래떡과 전남 장흥ㆍ강진의 표고버섯을 골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지역 안배 철학을 담았다. 취임 첫해인 2013년 추석에 전남 장흥 육포, 경기 가평 잣, 대구 유가 찹쌀 3종 세트를 선물로 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특히 불교계 인사들에게는 육포 대신 호두 등 다른 품목을 보내 ‘맞춤형’ 배려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김대중ㆍ김영삼 전 대통령은 모두 명절 선물에 출신 지역을 반영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부친 김홍조옹이 고향 거제도에서 잡은 멸치를 주로 선물했고, 전남 신안군 하의도가 고향인 김대중 전 대통령 역시 명절이면 신안 김과 한과, 녹차 등을 선물했다.
명절 선물이 ‘구설’의 화근이 되기도
선물 대상자가 다양하다 보니 소동도 빈번했다. 2006년 참여정부 때는 추석선물이었던 각 지역 전통차 세트가 문제가 됐다. 선물을 받을 대상자에 수해 이재민이 포함 됐는데, 이들에게는 선물 품목이 걸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었다. MB 정부 때는 황태를 포함한 추석 선물 세트 탓에 사달이 났다. ‘생물을 불가에 보내는 것은 결례’라는 지적이 일면서, 결국 다기세트로 막판 교체됐다. 또 황태의 덕장은 강원 인제이지만, 원산지 명태의 국적이 ‘러시아산’인 게 알려지면서 ‘국내산 농수산물 장려 목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논란에도 휘말렸다.
박근혜 정부 때는 논란이 더 컸다. 2015년 ‘정윤회 문건’사건으로 청와대를 떠난 뒤 여의도에 입성한 조응천 의원이 2016년 ‘추석 선물을 받지 못했다’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렸고, 청와대는 “일부 의원들에게 배달이 지연됐는데 그러느냐”며 배송을 취소해버렸다. 당시 일부 야당 의원들은 선물을 되돌려 보내기도 했다.
또 2016년 일부 대상자에게 보낸 설 선물이 화장품 세트였는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수사 과정에서 이 선물이 다시 회자됐다. 박 전 대통령의 ‘비선 주치의’로 알려진 의사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 제품이었고, 특혜 의혹이 더해져 민심은 한 없이 악화했다.
문 대통령도 구설을 피하지 못했다. 명절 마다 각 지역 특산품으로 선물을 구성하는데, 이번 설까지 세 번의 명절 동안 전북 지역 특산물은 단 한번도 뽑히지 품목에 오르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평화당은 ‘전북 홀대’을 거론하며 비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특정 지역 배제는 말이 안 된다”며 “주변의 추천을 받고 있고, 다음 명절 선물에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물론 대통령이 직접 명절 선물을 정하는 경우는 드물다. 해당 정부의 국정철학, 대통령의 성향을 누구보다 잘 아는 청와대 직원, 참모들이 고르고 대통령은 승인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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