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Biz 리더] ‘지프’ 수장 마이클 맨리, 다시 갈림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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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 리더] ‘지프’ 수장 마이클 맨리, 다시 갈림길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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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2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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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색 지프 랭글러 앞에 서있는 마이크 맨리 지프 브랜드 총괄 겸 FCA그룹 최고경영자(CEO). FCA 제공

◇지프

‘지프(Jeep)’. 고유명사가 보통명사가 된 경우. 특정 상표가 유명해 지면서 특정 상품을 지칭하던 말이 전체 상품을 의미하는 단어가 된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한동안 ‘봉고’가 마이크로 버스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됐던 것처럼 4륜 구동차를 대표해 온, 이름 자체로 특별한 차종이자 상표다.

지프의 탄생은 1940년대로 거슬러올라간다. 2차 세계대전 중이었던 1940년 7월 미국 육군은 자동차 제조사들에게 오토바이에 사이드카가 달린 삼륜차 대신 모든 지형을 정찰할 수 있는 경차 입찰을 요청했다. 이에 윌리스 오버랜드, 아메리칸 벤탐, 포드가 각각 지프의 원형이 된 차종을 납품했고, 미군은 윌리스를 주 생산 업체로 선정한다.

지프란 명칭은 당시 군인들이 새로운 자동차를 다용도란 뜻인 ‘General Purpose’의 약자 ‘GP’를 줄여 발음한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당시 인기 만화였던 ‘뽀빠이’에 나오는 캐릭터인 ‘유진 더 지프(Eugene the Jeep)’에서 유래됐다는 얘기도 있다.

전쟁을 거치며 미군의 운송수단으로 전세계에 알려진 지프는 1945년 종전과 함께 민간용 차종이 발표되면서 더욱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지프의 지난 날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1953년 카이저 사가 인수해 지프를 윌리스 모터스로 이름을 바꿨으며, 1963년에는 카이저 지프로 이름을 바꿨다. 1970년에는 아리칸 모터스(AMC)가 카이저 지프를 인수했다. 1978년 지프는 다시 크라이슬러로 넘어간다. 크라이슬러는 1980년대 미국의 자동차시장 침체기와 경기불황의 파도를 넘었지만, 2008년부터 시작된 자동차산업 위기로 또 한번 타격을 입는다. 결국 2009년 피아트가 지프를 소유한 크라이슬러를 사들였다. 결국 지프는 피아트와 크라이슬러의 합병회사 FCA의 일원이 됐다.

◇위기이자 기회

77년 동안 질곡의 역사를 거치면서도 원조 스포츠 유틸리티 차(SUV)로 끈질긴 생명력을 발휘하며 차 마니아와 대중의 사랑을 받아온 지프는 또 한번 중대한 변곡점을 맞고 있다. SUV가 대중화되면서 거의 모든 자동차 회사가 SUV를 생산하고 있고,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투박하지만 강인한 지프 고유의 매력에 충실한 SUV를 고집할 것인지, 확 방향을 틀어 점점 세단에 가까운 차로 변모할 것인지 기로에 놓인 것이다.

게다가 자동차 시장은 급변하고 있다. 전기차 등 친환경 차량이 빠르게 늘고 있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자율주행 기술까지 개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적인 디젤 엔진 차종으로 군용차에서 시작한 남성적인 이미지의 지프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 뜨거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지프의 역사와 선택의 중압감을 한 몸에 지고 기로에 서있는 사람은 지난해 7월 FCA의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마이크 맨리(54)다. 영국 에덴브리지 출신으로, 영국 사우스뱅크대에서 공학사, 애슈리지 경영대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경영인인 그는 지프 브랜드 총괄 등을 역임하며 9년여 동안 고(故)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전 FCA 회장과 함께 지프의 위기를 극복하는데 능력을 발휘했다.

◇세르지오 마르치오네의 남자

기로에 선 지프의 주인이 또 다시 교체되지 않고 상표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마이크 맨리의 역할이 컸다. 마르치오네 전 회장은 2009년 피아트가 지프를 소유한 크라이슬러를 인수했을 때 ‘지프의 세계화’를 주도할 국제 영업ㆍ제품기획운영 담당 부사장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할 자리로 생각했다. 그리고 적임자로 맨리를 선택했다. 마르치오네 전 회장은 지프를 소유한 크라이슬러를 ‘소중한 보석’이라고 강조했고, SUV를 성공시키는 것이야말로 인수합병한 FCA가 처음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핵심 계획이라 여겼다. 때문에 이 계획을 성사시킬 열쇠는 ‘지프’가 쥐고 있는 상황이었다.

맨리는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지프를 ‘혁신’했다. 2000년대 초반 FCA 관련 딜러사를 재편하며 인적 쇄신을 단행한 그는 2010~2011년에는 지프의 제품 쇄신과 재편을 주도했다. 이 때 지프는 신형 펜스타와 3.6ℓ V-6엔진을 탑재한 ‘그랜드 체로키’를 출시했고, 맨리가 ‘지프의 두 번째 주력차종’이라고 부른 ‘랭글러’를 새롭게 선보였다. 랭글러는 내부를 세련되게 뜯어 고치고, 힘이 부족한 엔진을 교체했다.

맨리는 지프 제품군에도 ‘선택과 집중’을 했다. 그는 크라이슬러가 지프를 소유했을 때 내놓은 후기 모델 ‘패트리어트’의 생산을 과감하게 중단했다. 대신 ‘컴패스’는 미국뿐 아니라 남미, 아시아, 유럽에서도 팔 수 있게 재설계하도록 했다.

맨리는 지프의 ‘세계화’에도 힘을 쏟았다. 2009년부터 FCA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운영 책임자로 일했던 그는 중국 광저우자동차와 긴밀한 협력을 통해 중국에서 지프의 영역을 넓혀갔다. 그는 지프의 인도 진출도 직접 지휘했다.

‘친환경’ 전략도 내놨다. 마르치오네가 타계하기 한 달 전인 지난해 6월 맨리가 핵심 의사결정권자로 참여한 ‘FCA그룹 2018~2022 사업계획’ 발표에서 2022년까지 FCA 그룹은 모든 지프 및 프리미엄 모델에서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 30종을 내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FCA는 지프를 포함해 2021년까지 모든 승용 차량의 디젤 엔진을 단계적으로 퇴출시킬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경상용차는 디젤 엔진을 탑재한 차종을 지속적으로 내놓을 방침이다. 지프는 승용차와 경상용차, 디젤과 휘발유 엔진 차종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자율주행기술을 반영한 초소형 지프 SUV도 내놓겠다고 했다.

맨리는 2009년 피아트가 지프를 소유한 크라이슬러를 인수할 당시 회사의 자원이 턱없이 부족했던 열악한 상황에서 지프를 중심으로 한 혁신으로 브랜드를 지켜냈고, 제품의 세계화에도 성과를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위기이자 기회를 맞은 지프를 맨리는 앞으로 어떻게 이끌어 갈까. “전세계에서 판매되는 SUV 5대 가운데 1대는 지프여야 한다”는 마르치오네의 비전을 유지할 것이라고 FCA는 설명한다. 회사 경영 전체로 봐도 맨리는 여전히 지프가 향후 FCA의 재정적 중심이 될 것이라 믿고 있다고 한다.

◇”(지프) 혼자여도 충분해”

맨리의 지프는 어떤 길을 가게 될까. 세단과 비슷해지는 고급화, 혹은 다른 SUV와 비슷해지는 대중화가 예상 가능한 선택지다. 하지만 맨리는 지프 고유의 정체성을 고수하면서 세단이나 다른 SUV의 편의성을 흡수하는 제3의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핵심역량’을 유지하는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다. “조립공장을 개조할 때는 수개월 동안 수익성이 높은 제품의 흐름을 끊어서는 안 된다”는 마르치오네의 가르침을 맨리가 버리지 않을 것이란 게 FCA의 설명이기도 하다. 맨리는 지난해 7월 마르치오네가 세상을 떠났을 때 추모사에서 “나는 그의 유산을 보존하고, 이 회사를 성공시키는데 필요한 가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도 이 같은 방향성과 관련해 맨리는 “혼자여도 충분하다”는 생각을 밝혀 지프를 포함한 FCA 소유 브랜드의 정체성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그는 지난달 14일(현지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북미 국제모터쇼에서 “일자리를 감축하거나 다른 자동차회사들과 협력할 생각이 없다”며 “FCA는 자립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강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FCA는 북미 생산공장을 개편해 소형ㆍ중형차를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공장을 SUV와 픽업트럭으로 전환해 이윤을 증대시켰다”고도 말했다. 지프와 그 정체성에 무게 중심을 더 싣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때문에 지프는 고급화로 ‘레인지 로버’와 비슷해지거나 지나치게 여성화하는, 원래 지프의 정체성과 반대 방향으로 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남성적이고 강하며, 길이 아닌 곳을 가는, 그러면서도 너무 비싸지 않은, 말 그대로의 ‘지프’다.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지프 로고. FC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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