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발 무역전쟁의 역설
‘관세의 남자(Tariff Man)’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미중 무역전쟁의 피해자로 흔히 거론되는 이들은 미국의 농민과 중국의 중소 제조업자다. 양국이 상호 관세를 부과하면서 미국산 대두, 중국산 의류 등 자국의 수입 비중이 높은 상품을 의도적으로 겨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세 전쟁이 장기화하면 그 여파는 특정 산업 영역을 넘어 경제성장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미국 농민, 중국 제조업자를 포함한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것이다.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 산하 연구소 인텔리전스 유닛(EIU)이 최근 발행한 ‘여진: 관세 인상의 광범위한 부정적 효과’ 보고서는 관세로 인한 여파를 10개 영역으로 나눠 정리했다.
◇소득대비 관세 부담 비중 가장 큰 빈곤층
관세는 기본적으로 수입품에 대한 세금이다. 자연히 상품의 가격이 올라가고, 이로 인한 추가 비용은 판매자와 구매자가 나눠 갖게 된다. 이 비용에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소득이 적은 가난한 가정이다.
미국 경제정책연구소(CEPR)의 2017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관세 부과로 인해 미국 가계의 하위 10~20%는 95달러, 중위층은 190달러, 가장 부유한 10%는 500달러를 추가로 지출하게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언뜻 부자일수록 경제적 부담이 커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체 수입에서 관세 부담이 차지하는 비중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하위 10%가 관세로 인해 지게 되는 부담은 가계소득 대비 1.6%로, 상위 10%의 0.3% 이하는 물론 중위층의 0.45%에 비해서도 상당히 큰 부담이다.
관세 부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산업이 주로 유통업계라는 점도 문제다. 가난한 이들의 직장이 대부분 유통업체인데, 이들 업체가 인력 감축이나 임금 삭감을 통해 손해에 대응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관세, 결국 전체적 비효율성 초래”
물론 관세 인상의 긍정적 효과도 존재할 수 있다. 예컨대 낙후 산업이 관세의 보호 아래 활력을 되찾거나 해외로 나간 일자리가 국내로 돌아오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다. 관세로 피해를 입는 빈곤층이 걱정된다면, 정부가 관세로 인한 추가 세입을 빈곤층을 위한 복지 지출로 전환하는 정책도 생각해볼 법하다.
그러나 미국 경제학자 배리 아이컨그린은 “관세는 국가 전체로 보면 비효율성을 유발해 경제 성장에 결국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관세가 부여된 업계가 전체적인 가격 상승으로 인한 이익(지대)을 추구하게 되는 점 △낙후 업계의 유지를 위해 들어가는 비용이 혁신과 효율화를 저해한다는 점 등을 들었다. 미국 의회예산국(CBO)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비슷한 결론을 내렸다. CBO는 미국 정부가 현재 수준의 관세만 유지하더라도 결국 성장률이 감소하며 추가 관세 위협으로 인한 불확실성이 투자를 더 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EIU는 최근 들어 관세 부과가 정치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현상에도 주목했다. EIU는 “트럼프 대통령이나 영국 브렉시트파와 같은 대중주의자들이 자유무역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관세를 이용한다”고 해석하면서 “관세 부과보다는 자유무역의 피해자들을 구제하기 위한 보완적 정책을 펴고 중국 등 불공정 무역 국가는 다자간 협력으로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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