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 직장인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연속으로 3일 이상 쉴 수 있는 1년에 몇 번 안 되는 기회 중 한번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로자에게 설 명절이 언제나 여유롭고 포근한 것만은 아니다. 근로자들의 각양각색 설 풍경을 들여다 봤다.
◇‘설 선물 반납 투쟁’을 아시나요
직장에서 받는 설 선물은 명절 분위기를 살릴 수 있는 대표적인 아이템이다. 그런데 이런 설 선물을 받고도 도로 반납한 근로자들도 있다.
공공운수노조 인천공항지역지부는 지난 1월31일 인천국제공항공사 동관 정문 앞에서 ‘2018 야합안 철회 및 제대로 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는 결의대회’를 열었다. 노조는 이 자리에서 받은 선물을 회사에 다시 반납했다. 사측에 항의의 뜻을 나타나기 위해서다. 인천공항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관련해 홍역을 앓고 있다. 사측이 정규직 전환 대상인 비정규직 노동자 1만명 중 약 2,000명의 일자리를 고용 승계가 아닌 경쟁 채용 방식을 통해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하자 노조가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사측은 정부의 정규직 전환 발표일(작년 5월 12일) 이전에 입사한 8,000명에 대해서는 소정의 절차만 거치면 고용 승계(전환 채용)를 하기로 했지만, 발표일 이후 입사한 비정규직 2,000명의 일자리는 공채를 실시해 외부에 문호를 열기로 했다. 정규직 전환을 기대하고 비정규직으로 입사한 경우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는 2,000명은 사실상 해고될 가능성이 높다며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공사 정규직 대비 3분의 1 수준 임금만 받는 1만명 노동자들에게 설 선물은 요긴하다”면서도 “고용안정 대신 해고를 위협하는 야합안이 아직 살아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이런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반납한 설 선물에는 스팸과 식용유가 담겼다고 한다.
◇아르바이트 근로자의 설 명절
누군가에게는 설 명절이 ‘당연히 쉬는 날’이 아니다. 아르바이트 근로자들이 그렇다.
아르바이트 포털 ‘알바몬’에 따르면 최근 아르바이트생 1,893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68.3%는 “설 연휴에 정상 근무한다”고 답했다. 업종별로 유통ㆍ판매가 79.3%로 가장 높았으며, △외식ㆍ음료(76.5%) △서비스(73.4%) △문화ㆍ여가ㆍ생활(66.7%) 등의 순이었다. 특히 설 연휴 근무자 가운데 68.0%는 당일인 다음달 5일에도 정상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 명절 근무 이유로는 “매장·사무실이 정상 운영해 어쩔 수 없다”는 응답이 56.0%였으나 “자발적 근무”라고 밝힌 아르바이트생도 40.9%에 달했다. 설 연휴 아르바이트의 장점으로는 “단기간에 근무해 돈을 벌 수 있다”라고 밝힌 응답자가 42.0%(복수응답)로 가장 많았고 “평소보다 많은 시급”(41.8%) “불편한 친지를 피할 수 있다”(27.8%)는 답변도 적지 않았다. 반면 단점으로는 “남들이 쉴 때 근무”라는 답변이 75.4%에 달했고, “일손이 부족해 업무량이 많다”(33.7%)와 “설 분위기를 못 느낀다”(30.8%)는 답이 뒤를 이었다.
◇“명절 최고의 선물은 휴식입니다”
평소 고된 근무에 시달려 온 근로자에게 가장 큰 설 선물은 ‘휴식’일지 모른다. 요새는 설에도 여는 가게들이 많아 예전보다 불편함이 많이 줄어든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편리함은 누군가 설 명절에도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참여연대 등 경제민주화전국네트워크는 지난 30일 서울 강남구 BGF리테일(CU 본사) 앞에서 “명절 최고의 선물은 휴식”이라고 주장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대형마트, 백화점, 시내 면세점 등 대형 유통매장의 명절 당일 휴일 의무화 및 월 4회 휴일 지정과 편의점 자율영업 도입을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네트워크는 기자회견에서 “명절 연휴도 누군가에게는 다른 날과 다를 바 없는 조금 더 한산한 출근길일 뿐”이라며 “바로 대형마트, 백화점, 면세점 같은 대형유통매장에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 그리고 우리 동네 어디서나 24시간 불을 밝히고 있는 편의점주 얘기”라고 지적했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대형유통매장 노동자와 편의점주들의 건강권, 휴식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의무휴업을 확대하고 점주의 자율영업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 이 단체의 주장이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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