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편성채널(종편) JTBC 화제의 드라마 ‘SKY캐슬’을 연출한 조현탁 PD는 작품을 찍기 전에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를 찾았다. 자료 조사를 위해서였다. 한참을 지켜봤더니 기이한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이들은 큰 가방을 메고 한쪽 손에 신용카드를 들고 돌아다녔다. 학원에 들어가거나 한 학원에서 수업을 끝내고 다른 학원으로 이동할 때 허기를 채우기 위해 편의점이나 식당을 찾는 행렬이었다. 자정이 넘어서도 식당엔 아이들이 우글우글했다. 늦게까지 공부하고 야식을 먹는 모습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이 그렇게 굴러가고 있더라고요.” 조 PD가 31일 서울 마포구 도화동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나 털어놓은 드라마 제작 뒷얘기다. 그는 “이 작품을 기획하지 않았으면 몰랐을 현실”이라며 “좀 더 문제 의식을 느끼고 방송을 제작해야겠단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다음은 조PD와 취재진이 나눈 일문일답
-드라마 인기 비결이 뭐라 생각하나(‘SKY캐슬’은 지난 26일 23.2%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비(非) 지상파 채널에서 제작된 프로그램 중 최고 시청률이다).
“교육 문제가 아닐까. 모든 부모가 나름대로 고충이 있다. 입 밖에 꺼내기 어렵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나눌 수 없는 문제고. 이 현실에서 드라마가 그 부분을 건드려서 시청자들께서 관심을 보인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촬영을 하러 야외로 가면 시민들이 좋아해 줬다. 식당에서 점심을 먹으면 옆에서 손님들끼리 얘기하고. 보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그분을 설득하더라. 일어나서 절하고 싶은 마음이었다(웃음).
-시작은 미약했는데(1회 시청률은 1.7%였다).
“괴로웠다. 하지만 그 성적을 받고 촬영을 해야 하는 게 내 일이다. 촬영감독이 휴대폰 문자를 보냈더라. ‘이제 올라갈 일만 남았다’고. 힘이 됐다. 유현미 작가와 통화 했는데 유 작가도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시청률 4% 나올 거라 농담했다. 유 작가가 오히려 ‘그런(나중에 반등하는) 사례가 있느냐’고 묻더라. 만약 그렇게 되면 나한테 밥을 사겠다면서. 초기엔 공교롭게 시청률 조사 회사에서 불이 나서 한동안 시청률을 알 수 없었다. 다행이다 싶었다.”
-대본 준비 과정은.
“유 작가가 아이를 대학에 보내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더라. 부모는 강압적으로 대학입시를 강요하게 된다. 다 자식 잘되라고 하는 일이지만. 하지만 그런 과정이 부모와 자식에 결국 어떤 걸 남기게 될까. 유 작가는 사람들이 원하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평생의 행복을 담보하는 일인지를 묻고 싶었던 것 같다.”
-드라마를 보고 입시 코디네이터를 찾는 부모가 있다더라.
“답답했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민낯을 보여주는 일이 아닌가 싶어 아쉬웠다. 드라마가 이야기하려는 게 입시 코디가 있다는 정보를 주려고 하는 게 아니잖나. 드라마가 끝나면 의도가 전달될 거라 믿는다.”
-혼외 자식과 패륜 등의 상황 전개가 자극적이다.
“‘막장’은 죄가 없다. 개연성과 설득력이 없을 때 문제가 된다. 자극적인 요소가 있긴 하다. 하려는 이야기를 풍부하게 운반하고자 가져온 설정이다. 이해해달라.”
-주인공 여성이 너무 가족에 매몰돼 있다는 비판도 있다.
“드라마에서 아이들 교육을 대부분 엄마가 도맡았다. 그렇다 보니 그런 지적이 나온 것 같다. 불편했다면 죄송하다. 혜나(김보라)의 죽음도 말이 나와 고민하고 있다.”
-17, 18회 대본이 유출됐다.
“편집실에서 17회 편집을 할 때 17회 대본 유출 소식을 접했다.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이어서 더 분노했다. 현장에서 피고름을 짜면서 스태프들이 일하는 데 너무나 손쉽게 밖으로 유출됐다. 범죄 행위였다. 수사 중이다.”
-강준상(정준호)이 수술 결과에 불만을 지닌 환자로부터 위협받는다. 이 장면 등 때문에 대한의사협회가 비판 성명을 냈다.
“캐릭터의 반응을 보여주고 싶었다. 커다란 문제에 닥쳤을 때 인물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었다. 강준상은 부모의 권유로 의대에 들어갔다. 큰 문제를 만났을 때 그런 캐릭터가 행하는 모순을 보여주고 싶었다. 의사에 대해 어떤 메시지를 주려 찍은 장면이 아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심려를 끼쳤다면 죄송하다.”
-연출에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배우들 표정에 집중하려 했다. 미세한 표정과 표정으로 겉과 속이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의 뒷모습은 거짓말을 못 한다. 그리고 손도. 그래서 손을 많이 찍었다. 웃는 얼굴로 상대를 속일 순 있지만, 손은 그렇게 못한다. 촬영감독, 미술감독과 그런 고민을 같이 나눴다.”
-아역 배우 섭외 과정도 궁금하다.
“캐스팅 디렉터 없이 연출부가 직접 신인들을 모았다. 오디션도 열었고. 무기명으로 의견을 제출해 의견을 모았다. 재능 있는 친구들이 많았다.”
-기억에 남는 장면은.
“한서진(염정아)이 김주영(김서형)에 무릎을 꿇은 장면이다. 촬영하면서 입시 소재 이상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서진에겐 ‘악(惡)’이 있다. 전통적인 주인공과 달리 호감을 느끼기에 불편한 지점들이 있다. 이런 요소들을 엄마의 입장에서 진심을 담아 연기하면 시청자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다. 가장 공을 들인 장면은 부모들의 단체 싸움이다. 우주(찬희)가 혜나 살인 용의자로 몰린 뒤 부모들이 서로 남 탓을 하는 상황이었다. 그 장면 찍는데 배우들이 진짜 몰입했구나 싶더라.”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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