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정책연구원 설문조사
사법농단 등 국민 신뢰도 바닥
법조인과 불일치한 결과 나와
민ㆍ형사 소송을 경험했던 국민 중 95%가 법조계의 ‘전관예우’ 관행이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조 관련 비리가 이어지고 사법농단 수사가 진행되면서, 법조계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떨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31일 퇴직 판ㆍ검사 출신 변호사에게 유리한 결정과 판결이 내려지는 전관예우 현상이 있느냐는 설문조사에 응답자의 45.5%는 “10년 전과 그대로”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응답자의 26.1%는 “좀 더 늘었다”, 23.5%는 “더 많이 늘었다”고 답했다. 이번 조사는 변호사를 선임해 송사를 치러 본 경험이 있는 국민 310명을 상대로 실시됐다. 실제 당사자로서 재판을 겪어 본 이들 가운데 95.1%가 전관예우 현상이 그대로이거나 더 악화됐다고 답한 셈이다.
전관 선호 현상은 구속 문제가 달린 형사 사건에서 더 잘 드러났다. 형사 재판을 경험한 사람 가운데 61.7%가 판ㆍ검사 출신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답했다. 이는 민사ㆍ행정 사건의 전관 선임 비율(38.4%)보다 크게 높았다. 특히 검찰ㆍ경찰ㆍ교정기관 소속의 지인으로부터 변호사 소개를 받은 이들 가운데 76.9%가 판ㆍ검사 출신 전관을 선임했다. 법조계 경험이 있는 이들이 전관 선호 현상을 일부 부추기는 현상도 발견됐다.
이런 인식은 전반적인 법조비리에 대한 평가에도 이어졌다. 응답자 가운데 54.2%는 “전반적인 법조비리가 10년 전과 그대로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조금 늘었다”고 답한 이는 21.6%, “많이 늘었다”는 대답은 12.9%로 나타났다. 열에 아홉 꼴인 88.7%는 “법조비리가 10년 전보다 나아지지 않았다”고 답한 셈이다.
하지만 법조계에 종사하는 변호사들의 응답은 이와 달랐다. 전국 변호사 300명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변호사의 56.4%는 “전관예우가 10년보다는 줄었다”고 답했고, 58.7%는 “법조 브로커가 10년 전보다 줄어들었다”고 평가했다. 법원 공무원에게 수수료 외에 별도 급행료(뒷돈)를 지급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변호사도 1.7%에 불과해, 1998년 같은 조사에서 나타난 31.4%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전반적인 법조비리에 대해서도 변호사들은 57.7%가 “전반적인 법조비리가 10년 전보다 줄어든 편”이라고 답했고, 7.7%는 “크게 줄었다”고 평가했다.
일반인과 법조인간의 이런 인식상 괴리에 대해 형사정책연구원은 “일반인들의 오판이라고 하더라도 법조계에 대한 신뢰 수준이 거의 바닥이라는 점만은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과거보다 대형 법조브로커 사건이나 법조 관련 게이트 등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의 법조로비 사건(전직 판사ㆍ검사 연루)이나 최민호 판사의 사채왕 뇌물 수뢰 사건 등 현직 법조인들의 비위 행위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지난해 6월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에 착수한 이후 대법원장과 대법관까지 재판거래와 재판개입에 관여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법체계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낮아진 것도 이 같은 ‘불일치’의 이유가 된 것으로 해석된다. 한 고위법관은 “사법부가 재판에서 실질적인 공정성을 갖추는 것만큼, 국민들에게 어떻게 보여지느냐에 대한 외견적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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