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 고위 당국자 “美 검토 중 에스크로 계좌, 지금 논의할 문제 아냐”
2월 말 열릴 것으로 보이는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와 관련해 외교부 고위 당국자가 31일 “북한 핵 포기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평화체제는 빠질 수 없는 주제”라고 말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올 초 신년사에서 주장한 평화체제 협상 문제가 이번 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실무협상에서 강하게 제기될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이 핵 포기 대가로 원하는 체제 보장과 북미 관계 개선, 제재 해제를 통한 인민 생활 수준 향상 등을 논의하는 데 있어 평화체제는 필수 요소”라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6월 첫 북미 정상회담 당시 ‘센토사 합의’에 담긴 4개 기둥 중 하나인 평화체제 구축은 김 위원장이 올 신년사에서 ‘평화체제를 위한 다자협상’을 공식 제안하면서 2차 북미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떠오르고 있다. 당국자 발언으로 미뤄 당장 다자협상이 본격화하지는 않더라도 2차 북미 회담에서 6ㆍ25전쟁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계획 등 평화체제 관련 사안이 협상 테이블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비핵화 사안 중에서는 영변 핵시설 폐기가 핵심 의제가 될 전망이다. 이 당국자는 “북한이 먼저 영변 핵시설 폐기를 얘기했으니 (논의는) 영변에 집중한 뒤 다른 사안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랜 기간 동안 영변이 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의 기본이자 중심이었기 때문에 이를 폐기하는 것은 완전한 비핵화로 가는 아주 중요한 진전이라고 우리와 미국은 보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다만 북측이 비핵화 조치에 얼마나 진전된 입장을 보일지 불확실한 상황인 만큼 미측은 여전히 대북 제재에 완고한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미측이 ‘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북한이 특정 비핵화 조치를 취할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현금을 지급하는 구상을 검토한다는 관측도 일각에서 나왔지만 지금 시점에서 논할 문제가 아니라는 게 외교 당국 평가다.
이 당국자는 “(에스크로 계좌 등 경제적 비핵화 인센티브는) 미국과 우리가 줄곧 제시한 ‘밝은 미래’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된다”며 “뭘 주고받는다는 성격의 문제라기보다는 ‘비핵화가 완성되면 이 정도 갈 수 있다’는 차원의 얘기”라고 했다. 에스크로 계좌는 은행 등 제3자에게 대금을 예치하고 당사자 간 에 합의한 일정 조건이 충족됐을 때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부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계좌다.
전문가들 분석도 비슷하다. 북미 협상 상황을 잘 아는 정부 소식통은 “에스크로 계좌를 활용해 경제적인 보상을 해주겠다는 구상은 현재 상황에서 (비핵화 프로세스 진전을 위한) 직접적인 해법이라 보기는 어렵다”며 “대북 투자에 관한 문제인 만큼 제재 완화가 상당 부분 진척된 다음에야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에스크로 계좌라는 구상 자체에 북한이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핵무력 완성을 기반으로 북한이 핵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에, (핵포기가) 압박에 굴복한 것이나, 돈을 받고 (핵을) 팔아먹는 것처럼 비쳐서는 안 된다”고 분석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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