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는 암 투병 끝에 지난해 10월 별세한 김서령 작가의 유고 산문집이다. 고인은 자신을 ‘생활 칼럼니스트’라 정의했다. 평범한 일상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 안에 담긴 저마다의 세계를 정갈하고 단아한 문체로 그렸다.
경북 안동의 의성 김씨 종가에서 나고 자란 작가가 어릴 적 접했던 음식을 떠올리며 쓴 글을 모았다. 고인은 홀연히 떠났지만 그의 글은 살아 남아 생기를 뽐낸다. 늦은 밤 수틀을 짜며 배추를 나눠 먹는 아낙들을 이렇게 표현한다. “배추로 무얼 해 먹느냐? 대개는 된장 한 보시기를 퍼내와 식은 밥을 반찬 삼아 날 걸로 찍어 먹었다. 배추 서너 포기가 순식간에 동이 난다. 무도 길쭉하게 쪼개서 우적우적 씹어 먹는다. 와삭와삭, 사각사각, 까륵까륵!”
영롱한 빛을 내뿜는 고인의 문장은 배추적, 호박전, 취나물, 쑥국, 집장 등 소박한 음식들을 편애했다. 고인은 재료를 고르고, 손질하고, 조리하는 그 어느 것 하나도 허투루 지나치지 않았다. 김치를 칼로 썰지 않고 결대로 쭉쭉 찢어 밥에 척척 올려 제 맛을 찾은 건 자연적일수록 가치를 발휘한다는 조상들의 지혜를 잊지 않은 덕분이다. 봄에 바구니 끼고 냉이 캐러 나갈 때 할머니가 쥐어준 야물고 짤막한 나무 꼬챙이는 뿌리와 잎을 다치지 않게 하라는 배려였다. 설탕물 한 대접을 들이킨 감미로움은 고인에게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고인은 설탕이 싸구려 취급 받는 탓에 감미로움이란 정서조차 덩달아 싸구려로 취급 받는 걸 안타까워 한다.
외로운 사람끼리 배추적을 먹었다
김서령 지음
푸른역사 발행ㆍ268쪽ㆍ1만5,000원
고인은 잊고 있었던 것, 무심코 지나쳤던 가치를 환기한다. 감관을 예민하게 열어놓기만 하면 삶의 순간순간 다른 차원과 층위를 경험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오랜 시간 그와 함께한 박혜숙 푸른역사 대표는 “혼밥의 시대에 같이 먹는 행위, 음식을 만드는 행위가 치유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책 제목에 담긴 뜻을 소개했다. 늦은 밤 아낙들이 모여 배추적을 해먹으며 외로움을 달랜 것처럼, 고인의 문장들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배추적이 돼 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란다.
고인의 다정한 글은 이 책에서 멈췄다. 김성희 북칼럼니스트가 책에 남긴 편집 후기. “이제그는 세상을 떠났다. 따뜻하고, 단단하며 그윽하면서도 영롱한 그의 글도 더불어 졌다. 이제 그런 향기로운 글을 다시 만나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하면 아쉽다. 퍽.”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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