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금리 동결, ‘점진적 인상’ 삭제, 보유자산 축소 시사… 한은 반색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가 ‘완벽한 비둘기’로 변신했다. 2015년 말 이래 9차례에 걸친 기준금리 인상 행진을 끝낼 뜻을 밝히는 한편으로, 또 다른 통화긴축 수단인 보유자산 축소마저 1년여 만에 중단할 의사를 내비쳤다. 2008년 금융위기 수습을 위해 무제한으로 뿌린 유동성을 지난 3년 간 줄기차게 거둬들였던 연준이 시장 기대보다도 이른 시기에 긴축 사이클 종료를 전격 선언한 것이다.
◇’점진적 인상’ 문구마저 삭제
연준은 30일(현지시간) 종료된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현행 연 2.25~2.50%로 동결하면서 그간 유지했던 추가 금리 인상 신호를 대폭 약화시켰다.
연준의 입장 전환은 이날 발표된 FOMC 성명에서 뚜렷이 감지됐다. 2015년 이래 성명에 꾸준히 포함돼 연준의 통화정책 기조로 받아들여졌던 ‘점진적 금리 인상(further gradual increases)’ 문구가 사라진 것이다. 대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지난 4일 공개 강연에서 언급한 ‘인내심’이 성명에 등장했다. 당시 파월 의장은 완만한 물가상승률을 언급하며 “연준은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지켜보며 (금리 인상에)인내심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
파월 의장도 FOMC 회의 종료 직후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비둘기파(통화완화 선호) 메시지를 쏟아냈다. 그는 “기준금리를 인상할 논거가 다소 약해졌다”며 “현행 기준금리가 중립금리 범위 안에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중립금리는 무리 없는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금리로, 기준금리의 이상적 수준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기준금리가 중립금리 바로 밑에 있다”는 파월의 지난해 11월 말 발언보다 한발 진전된 것이다.
연준은 이날 별도 성명을 내고 “보유자산 축소 계획을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한발 나아가 “이번 FOMC 회의에서 보유자산 축소를 ‘종료’할지에 대해 논의했다”고 했다. 연준이 2017년 10월부터 시행해온 보유자산 축소는 양적완화(채권 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 시기에 사들인 채권을 매각해 시중 유동성을 회수하는 정책이다. 연준이 통화긴축 정책의 양대 수단으로 꼽히는 금리 인상과 보유채권 매각 모두에 대해 중단을 시사한 셈이다.
◇”연준이 시장에 항복했다”
시장은 연준 금리 정책이 기대 이상으로 급선회했다는 반응이다. 파월 의장이 지난해 11월 말 중립금리 발언을 시작으로 비둘기파적 색채를 강화하긴 했지만, 연준이 지난해 9월 FOMC 회의에서 올해 세 차례 금리 인상을 예고하고 10월 회의에서도 금리 인상 가속화 기조를 재확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전’이라고 평가할 만하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연준이 금융시장의 비관적 경기 전망을 의식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연준은 이번 FOMC 회의에서도 미국 실물경제가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했지만, 시장은 증시 급락, 장단기 금리차 확대 등 미국 경기의 부진을 예측하는 방향으로 급변동하며 팽팽한 시각차를 보여왔다. 마이클 게펀 바클리스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시장에 항복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의 가파른 하강 조짐도 연준의 입장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파월 의장은 이날 중국과 서유럽을 거론하며 “일부 주요 경제에서 성장이 둔화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한편, 지난 연말부터 1개월 남짓 지속된 미국 연방정부 부분폐쇄(셧다운)와 미중 무역전쟁,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을 주요 경제적 불확실성으로 언급했다. 통상 국내 경기에 초점을 맞춰 금리 결정 배경을 설명해온 연준 의장들의 행보에 비춰 이례적이다.
◇세계 경제는 반색
연준이 이번 FOMC 회의를 계기로 2015년 이래 지속해온 긴축 사이클을 마감했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 평가다. 팀 더이 오리건대 경제학 교수는 “미국의 성장 둔화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연준이 시장을 지켜보겠다고 한 것은 사실상 금리가 정점을 찍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시장조사업체 르네상스매크로리서치의 닐 더타 대표는 파월 의장이 금리 인상을 재검토할 핵심 조건으로 물가 상승을 언급한 것을 지적하며 “물가가 매우 느리게 움직이고 있는 터라 짧아도 9월까지는 연준의 금리 동결 태세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연준이 미국 경제의 성장세가 지속될 것이란 판단을 유지한 점을 들어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이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견해도 있다.
한국은행은 연준의 입장 선회에 반색했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31일 기자들과 만나 “연준의 결정이 시장 예상보다 더 완화적이어서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우리뿐 아니라 많은 나라의 통화정책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연준의 금리 인상 기조에 따라 증폭됐던 금리 동반 인상 압박이 크게 감소했다는 안도감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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